13년이라는 시간에 붙여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단순했다.
예쁜 로고 하나, 멋진 포스터 하나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지금, 나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일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과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브랜딩과 키비주얼, 아트워크를 통해 브랜드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라는 사실을.
한곡의 음악에서 멜로디와 가사, 리듬이 따로 존재할 수 없듯이 브랜드도 시각과 경험이 맞물려야 진짜 힘을 갖게 된다.
나는 그 흐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일을 한다.
로고 하나, 컬러 하나, 키 비주얼 한 장이 흩어지지 않고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목소리로 표현하도록 묶어낸다.
그 과정에서 결을 맞추고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여, 결국 브랜드가 가진 힘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디렉팅한다.
나를 지금의 자리로 만든 두 가지 경험이 있다.
첫째는 DURT라는 스트릿 브랜드를 직접 운영했던 일이다.
밤늦게 포장을 하고, 입고를 맞추고, 고객 응대를 하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디자인이 실제 매출에 도움이 될까?”
“고객이 호감을 가질 경험은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비주얼은 멋있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실질적인 효과와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운 것이다.
둘째는 grdnrush(가든러쉬)라는 이름으로 뮤지션 활동을 했던 경험이다.
음악을 직접 만들고, 믹스와 마스터링, 유통까지 해보며 아티스트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가까이서 알게 되었다.
단순히 앨범 커버 하나가 아니라, 브랜딩, 확장 가능성 및 마케팅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 두 가지 경험은 디자이너의 시선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을 이해하게 해 준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 내가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바라볼 때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유다.
운영자의 입장에서 던진 질문들이 내 시선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3년 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좋은 결과물은 언제나 결이 맞는 클라이언트와 함께할 때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일을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만들어갈 때 진짜 힘이 생긴다.
특히 내가 오래 경험해 온 음악, 예술, 패션, 서브컬처 분야에서 그 시너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데만 집중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더 많이 협업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브랜딩 작업은 한 팀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로고 하나, 패키지 하나가 사업과 함께 간다는 걸 알기에 쉽게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맡는 부분이 브랜드 전체에서 10%나 20%일지라도, 그 작은 부분에도 직업적 사명감을 담는다.
어떤 것이든 결과물에 작업자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믿음으로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클라이언트가 가진 진심과 내가 쏟아낸 진심이 맞닿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
이 블로그는 내가 경험한 프로젝트 과정과 문제 해결의 기록을 담아낼 것이다.
거창하지 않게, 하지만 꾸준히 쌓아가는 케이스 스터디이자 나 스스로 게으르지 않게 공부하는 기록장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부담 없이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