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순간을 풀어내다
2010년, 음악계에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Far East Movement의 "Like a G6"가 빌보드 핫 100에서 3주간 1위를 기록하며 아시아계 미국인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한국계 멤버들이 포함된 이 LA 출신 4인조 그룹은 단숨에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클럽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like a G6, like a G6" 라는 HOOK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앤섬이 되었고, 400만 다운로드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그들의 내한공연 키비주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힙합 팬인 나에게는 꿈같은 순간이었다. 보통 이런 작업에서는 준비된 아티스트 사진과 프레스킷이 제공이 된다.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한국 무대에 맞게 해석하고 구현할지가 나의 몫이었다. 공연 키비주얼은 언제나 예민한 영역이다. 비주얼로서 한눈에 들어와야 하고 공연에 대한 정보도 잘 들어와야 한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게 해야한다. 그리고 행사와 관련되어있는 광고 브랜드들과의 노출 비율, 로고 배치, 시각적 위계까지 신경써서 작업되어야 한다.
보통 해외아티스트들은 공연 전날 오게되는데 공연 전날 저녁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이 리허설을 위해 장비를 세팅하려는데 110v를 220v로 변환하는 잭이 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저녁 9시가 넘어 왠만한 마트들은 문을 닫은 상황이였다. 인터넷으로 부랴부랴 24시간 마트를 검색하고 일일히 전화를 돌리다가 변환잭을 구했다. 이 글을 보면서 당신은 “아니 디자이너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랬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그들에게 전달하며 바로 앞에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아직까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그들은 놀라울 만큼 겸손하고 팬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포토월 앞에서 마지막까지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며 진짜 아티스트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만든 아티스트들의 진심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좋은 음악과 진정성 있는 태도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Like a G6"가 들리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변환잭을 들고 뛰어다녔던 밤거리, 포토월 앞에서 웃으며 팬들과 사진을 찍던 그들의 모습,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뿌듯함까지 말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넘어 진심을 읽어내고 담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일. 그것이 진짜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것을 Far East Movement의 작업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