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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Dec 22. 2022

빈 의자 이야기

순간의 말들(3)

이상하다...

의자 하나 사라진다 해도 똑같은데...

혼자 앉은 테이블에 의자 하나가 사라지면 외톨이가 된 것 같아 빨리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


이 시간에는 늘 직장인으로 북적거리는 카페 안,

예상했던 발걸음이었는데,


다행히 의자 2개인 작은 테이블의 자리가 남아있었는데...

계속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다

자리가 없자 옆테이블을 당기고 의자를 그러모아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


자리 없으니 그냥 나가주길 바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내 앞 의자를 써도 되냐고 묻는 찰나


된다고 끄덕이면서도 의자가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재빠른 일행 중 누군가가 다른 의자를 끌어간다


살아남은 의자 앞에 앉아서 문득 글이 쓰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쓰는 글이 이런 주제의 글이 될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내 것이지만,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 것이 감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의무감에 쓰고 싶지 않아 바쁜 일이 끝났는데도 멀찌감치 내려놓고 있었는데(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만),


의자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은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고

혼자 가는 것을 즐길 정도였으니

사람으로 시끌시끌한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물론, 조용할 때 더 좋긴 하지만,


빈 의자에 내게만 보이는 공기라도 앉아 있다는 듯이...

책을 한창 좋아할 때 책을 친구처럼 들고 다니던 마음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을까


의자에게 애착인형 같은 감정을 느끼다니...

혼자이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긴 싫은 감정의 결이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묘한 기분을 느낀다

빈 의자를 가져가려던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의 네 개의 다리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

의자가 없어지면 왠지 살짝 기우뚱할 것 같은 기분


창밖으로 큰 흰 개와 산책하는 사람이 지나가고,

쌓인 눈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개의 흰색이, 흰색과 흰색이어서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들이 평온한 마음을 불러온다, 카페 안의 소란과는 상관없이


아직 놓여 있는 빈 의자 덕분에 마음이 기우뚱해지지 않은 탓일지도...


글을 쓰기 전 읽었던 이웃 브런치 작가님의 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작가님은 달이를 좋아하지 않아 아메리카노를 즐겨 드시나 보다(어감이 좋은 바닐라 빈 라테를 마시고 싶었음에도), 카페에 오기 전 나는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빈 라테 사이에서 갈등을 했었다

먹고 나면 깔끔하지 않아 늘 후회하는 단맛, 하지만 힐링이 되는 단맛, 오늘은 마시는 동안의 단맛(기분)을 선택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바닐라향

마신 뒤의 기분은 1시간 뒤의 나에게 맡기기로 한다


미동도 없이 빈 의자가 앉아 있다

주인을 믿고 기다리는 충직한 개처럼

지루해하지도 않고 몸을 뒤틀지도 않고

내가 일어설 때까지

가만히 침묵으로 기다려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빈 의자는 사물이니까


감정을 이입한 것은 나이고...

이입한 순간 사물이 사물이 아닌 것이 되는 이상한 일


그것이 기분의 일이고, 감정의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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