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는 특이하게도 문학 장르인 '시'를 소재로 했다. 시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어떻게 스토리화 하여 보여줄 생각을 했을까.
<아네스의 노래>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닌 화자가 시를 끌고 간다. 시인은 사건을 지켜본 사건 밖의 인물(영화 속 미자)이지만, 시인은 기꺼이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 아네스의 입장에서 진솔하고 담담하게 시상을 펼쳐나간다. 그래서, 시가 한층 깊어지고 큰 울림으로 먹먹해진다. 죽음을 앞둔 화자와 대비되는 현실. 아네스의 죽음과 별개로 해는 뜨고 해는 진다. 그런 이미지들의 대비에 먹먹해진다. 그리고, 아네스는 그 순간에도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마지막 말을 전하면서 또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아픔도 없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희망에 대해서...
희망이 없는 현실은 무거운 옷을 입고 걸어가는 것 같다. 고단하고 아파도 벗을 수 없는 옷. 옷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중에는 햇빛의 따사로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모든 것이 가시처럼 느껴진다. 풀 한 포기조차 노래하지 않는다. 아네스는 희망을 본다. 다시 예전처럼 따사로운 햇살에 감동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한 하루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작은 풀 한 포기도 세상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작은 것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해진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으라는 말이 나왔겠지만.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이런 말들도 자주 듣다 보니 식상해진다. 울림이 없어진다. 시는 무엇일까. 그런 일상적인 말들에 이미지를 입혀서 깊은 울림으로 감각하게 하는 힘. 시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시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들이 그런 것 같다. 아무 말이나 되지 않게 하는 힘. 똑같아서 잔소리로 듣지 않게 하는 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시 속의 화자가 된 것 같다. 죽음의 순간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다시 작은 것들을 보게 된다.
비가 올 것 같다. 어제내 곁에 머물던 햇살 한 줌을 떠올린다. 등을 어루만져주던 따스한 햇살의 감각이 또 하루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