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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29. 2016

역포아들, 창덕궁 달빛기행 어때?

창덕궁, 달빛기행 1

 

 “웬일이냐, 겜돌이?” 

 5학년 2반 역사부장, 한여울은 역포아(역사를 포기한 아이)라 문사철에게 되물었다. 


 “문자, 방자, 구자, 우리 할아버지 뜻에 따른 거야.”

 문사철은 게임에 정신 팔려 핸드폰 액정만 톡톡톡 두드렸다.

 

 “기억을 잃으셨다는 문자, 방자, 구자 할아버지께서?”

  한여울은 눈을 반짝이며 확인했다. 

 “응, 할아버지 90세 기념으로...”

 여전히 한여울 말에 건성인 문사철이다. 

 “90세 기념인데 내가 꼽사리 끼어도 돼?”

 그제야 문사철은 안경 낀 눈을 들어 한여울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는 심심할 것 같고... 또 넌 역사 좀 하니까...”

 문사철은 귀찮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정말 땡잡았네~ 느린 손 때문에, 인터넷 예매실패율 100%였는데...'

 신나서 헤벌쭉하던 한여울은 이내 표정관리를 했다.


 솔직히 손 빠른 겜돌이 덕분에 창덕궁 달빛기행을 가게 된 건 대환영이었지만, 아직 고마워하긴 일렀다.


 “창덕궁 달빛기행 광고를 보시고는 막 가고 싶다고 하시는 바람에...”


 5대궁(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중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바로 창덕궁, 달빛기행에 가고 싶었던 한여울은 문사철 할아버지께 감사하며, 문사철 부탁에 쿨하게 답하고 창덕궁으로 향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잠도 없나?”

 돈화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문사철만 놀란 건 아니었다. 한여울도, 문사철 할아버지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나 참, 잠도 없나? 이 달밤에 이 많은 사람들이...”

 문사철 눈엔 사람들이 이상했다. 

 ‘아니, 이미 지나간 역사가 뭐라고... 하여간 지난 일에 연연하는 미련한 사람들 같으니...’

 다들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도 바쁜 이 과학의 세상에, 지나간 역사에 관심 두는 사람들이 문사철 눈에 이상할 뿐이었다. 

 '참 나. 세계문화유산이 뭐 집을 줘? 게임머니를 줘? 유별 떨긴... 흥칫쯧.'


 

 

 “와, 궁궐의 밤은 이런 느낌이구나!”

 툴툴거리는 문사철과 달리 한여울은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어휴, 여기도 역사 환자 납셨네... 안 데려 왔으면 어쩔 뻔했어?’

 그동안 게임 때문에, 한여울 잔소리에 시달렸던 문사철은 구긴 체면이 서는 같아, 어깨가 뻣뻣하게 솟았다. 


 “위덩더둥둥...날 좋고, 달 밝고...”

 할아버지도 기분 좋으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4월 봄 밤, 그윽한 달빛 아래 할아버지와 한여울, 문사철은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달빛기행 시작을 기다렸다. 

 “저게 어처구니야.”



                                 돈화문 지붕 위의 어처구니(잡상이라고도 함)

 

 돈화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 한여울은 돈화문 어처구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말이야? 쟤들이 서유기에 나오는 그 캐릭터들이라고?”

 ‘서유기’라는 말에 문사철 귀가 번쩍, 눈이 동그래져서, 돈화문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저건 뭐지?’

 그때였다. 무언가 어처구니 뒤로 휙 지나가는 것이 문사철 눈에 들어왔다. 문사철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돈화문 지붕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한여울, 봤냐?”

 문사철은 자기가 본 것을 한여울도 봤는지 궁금했다. 

 “봤지. 달빛 한번 좋다!”

 한여울은 문사철이 본 걸, 못 본 것 같았다.

 “어, 저기!”

 뜻밖에 문사철 할아버지도 무언가 보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돈화문 높은 지붕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참이나 살피고 계셨다.

 “할아버지, 뭘 보셨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으셨다. 문사철은 다시 하늘을 보았다.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달빛기행’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보름달이 창덕궁 위로 두둥실 솟아 있었다. 



 ‘이런 날 밤에는 요괴 잡는 게임하는 게 딱인데...’

 문사철은 돈화문 어처구니들을 보면서 마음은 이미 요괴들을 해치우러 어처구니들과 서역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요괴들아, 꼼짝 마라. 이 문사철님이 가신다!’

 손오공과 맹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던 문사철 눈에 다시 뭔가 훅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도대체 뭐냐고? 귀신? 아님 외계인?’

 문사철은 아까와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할아버지, 보셨죠?” 

 문사철은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여울 이야기를 듣고 계셨다.  


 ‘분명 뭔가 있어. 아냐, 그런 건 없어... 그럼 내 눈으로 본 건 뭐지? 잘못 본 거 아닐까?’

 문사철은 공연히 심란했다.

 ‘분명 뭔가 있어. 달빛기행, 딱 걸렸어.'

 이제 문사철은 어서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창덕궁아, 기다려!’

 이번 달빛기행에서 문사철은 뭔가 특별한 일을 맛볼 것 같은 예감으로 심장에 시동을 걸었다. 콩콩콩 쿵쿵쿵 부르부르, 예사롭지 않은 호기심 시동을.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K보물) 정문, 돈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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