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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29. 2016

달밤, 궁궐에 온 걸 환영한다!

창덕궁, 달빛기행 2

 

 “원래 왕을 뵈려면 이 금천교를 건너야 합니다. 그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이 금천교 금천수로...”

 도슨트의 해설로 달빛기행은 시작됐다. 


      창덕궁의 금천교(북쪽 방향)


 “설마 이 다리를 건너면 조선으로 가는 거 아니겠지?”

 한여울은 들떠 있었다. 솔직히 문사철도 그랬다. 금천교를 지날 때,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이래서 할아버지가 오자고 하셨나.’

 문사철 할아버지도 얼굴에 미소를 짓고 계셨다.


     창덕궁의 금천교(남쪽 방향)


“쉬이익~휘익~”

 일행들이 인정전을 지나, 낙선재에 닿았을 때 한 줄기 바람이 휙 불더니 일행을 밝혀주던 청사초롱 불빛이 흔들렸다. 


     창덕궁 낙선재

 

 

 “화장실 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문사철과 한여울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외떨어져 있었다. 낙선재 맞은편 언덕 위 나무 사이에.  


     낙선재 맞은편 화장실 입구


 “화장실도 분위기 좋네!”

 한여울은 꽃향기를 맡느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코 평수를 넓혔다.

 ‘에휴, 여자들이란...’

 한여울을 지켜보던 문사철도 코를 벌렁거리며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다. 우거진 나무, 하얗게 피어 있는 꽃길, 굵은 모래(마사토)가 깔린 땅을 사그락 사그락 밟으며 문사철과 할아버지 그리고 한여울은 화장실로 향했다.    

 ‘어라? 달, 어디 갔어?’



 구름이 달을 가리자, 갑자기 모든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늘 핸드폰 속에서 달리고, 터뜨리고, 경쟁하던 문사철은 게임과 완전 다른 고요한 세상이 낯설었다. 


 “부, 불이야!”

 갑자기 주변이 온통 어두워지더, 불씨 하나가 문사철 할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호라락 훨훨, 밤의 궁궐에 온 걸 환영한다!”
 

 불씨는 할아버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 이상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불과 함께 사라지셨다.

 “할아버지!”

 불씨는 문사철과 한여의 외침 소리를 날름 잡아먹고 활활 타올랐다. 그러더니 여기저기 번졌고, 불씨들은 다시 큰 불덩이가 되어 미친 듯 두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할아버지!”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밤의 어둠 속 깊이 퍼져 나갔다.

 “으악!” 

 곧이어 할아버지 신음소리가 주변의 만물(모든 것) 속으로 스며들었다. 문사철도 한여울도 그리고 문사철 할아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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