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화마 놈들... 하필 왜 이 타임에...'
밖이 소란스러워 달빛무사는 하던 일(볼 일)을 급히 수습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의 기억이, 나를 소환했구나!”
구름 속에서, 달빛무사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달빛을 타고 돈화문 앞에 나타난 달빛무사.
“나는 달빛무사다!”
‘어처구니들 신경 쓰이지 않게 옆으로...’
달빛무사는 돈화문 어처구니의 경계를 방해하지 않으려, 옆문인 금호문으로 갔다.
창덕궁의 옆문 금호문
금호문에는 어처구니가 지키지 않는다는 걸 달빛무사가 모를 리 없었다.
‘담 넘었다고 도둑이라니? 오 마이 갓, 나 그런 캐릭터 아님.'
금호문 현판
금호문을 훌쩍 넘어 금천교 아래에 선 달빛무사는 품속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이 물, 한 병만 허락해 주시오.”
금천교 아래로 내려간 달빛무사는 호리병을 보이며 귀면(도깨비 얼굴의 궁 지킴이)의 허락을 구했다.
“우리에게 말을 거는 너는 누구냐?”
귀면은 달빛무사를 노려보았다. 금천교 다리 아래, 잡귀를 쫓는 귀면은 무섭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금천교 귀면
“감히 이 귀한 금천의 물을 탐하는 놈, 넌 누구냐?”
귀면은 부리부리 큰 눈을 굴리며, 코를 킁킁거리며 달빛무사를 살폈다.
“사악한 기운은 없는 것 같군.”
약간만이라도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면 귀면은 달빛무사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물은 신성한 것,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 내가 내는 문제를 맞히면 허락하겠다.”
“좋소, 문제를 내시오.”
달빛무사는 두려움 없이 귀면의 문제를 기다렸다.
“다음 중, 틀린 것을 찾아라. 하나, 금천수. 둘, 명당수. 셋, 방화수. 넷, 아리수.”
달빛무사는 눈을 감았다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나서 눈을 떴다.
“답은 넷. 아리, 아리, 아리수! 아리수란 큰 물. 즉 한강물.”
(금천수: 비단같이 맑은 물 + 명당수: 궁궐은 풍수지리상 명당에 자리 잡고 길한 물을 흐르게 해 명당수 + 방화수: 화재가 나면 방화수로 사용)
“좋다, 한 병의 물만을 허락하겠다!”
달빛무사는 무서운 귀면 뒤쪽, 북쪽 난간으로 내려가 호리병에 물을 담아다.
‘이제 이 물은 금천수, 명당수, 방화수에 이어 기억수가 된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달빛무사 주변을 비추자, 남쪽 방향 귀면과 달리 북쪽 방향 귀면은 환하게 웃었다.
“빛처럼, 바람처럼 낙선재로!”
달빛무사는 금천의 물을 담아 낙선재로 향했다. 발은 땅을 디뎠으나, 사각사각 마사토 밟는 소리만 바람결에 날릴 뿐 발자국은 남기지 않았다.
“아니, 겁 없는 저 애송이는 또 누구냐?”
화마들은 달빛무사를 보자, 미친 듯이 훨훨훨 춤을 추듯 타올랐다.
“아버지!”
문사철의 할아버지 목소리가 불안했다. 화염 속에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외쳤다.
“아버지!”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듯, 문방구 할아버지 목소리는 애가 탔다.
‘제발 할아버지 기억이 돌아오면 좋겠는데...’
과거 기억이 전혀 없던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할아버지!”
한여울 목소리도 높아졌다.
“음하하하... 불안한 기운이 우릴 더 뜨겁게 하리!”
화마악당은 기세 등등 활활 타올랐다. 모든 것을 다 태울 듯이.
문사철 할아버지의 기억 한 줄기가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연기처럼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