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Mar 30. 2016

화마를 잡아라!

창덕궁, 달빛기행 4

 

 ‘아, 아버지...’

 할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댕댕댕댕, 불이다, 불! 불을 멸하라!”

  어두운 밤, 창덕궁에 종소리가 울렸다. 

 “화마를 잡으러 출동하라!”

 24시간 대기하던 경성 소방 조(일제강점기의 소방관, 그 이전에는 멸화군이라 함)들은 모두 재빨리 현장에 투입됐다. 

 “불을 멸하라!”


     사진-소방박물관    


 제일 먼저 6인이 한 조를 이룬 펌프가 불길을 잡기 시작했고, 급수조들이 물통을 들고뛰었다. 

 “지붕 위로 오르라!”

 몇몇의 경성 소방 조들은 수총으로 화마들을 공격하고, 몇몇의 멸화군은 갈퀴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화마가 번지지 않게 불을 제압했다. 그러나 화마는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미친 듯 불타올랐다.  

 “대피하라!” 



      멸화군이 화재 진압하는 모습-소방박물관

 


 문사철 할아버지, 문방구의 아버지는 1917년 창덕궁 인정전 불을 끄다가 심한 화상을 입고 온몸에 화마의 뜨거운 저주를 달고 살았다. 1926년 병마 중에 문사철 할아버지를 낳았고, 문사철 할아버지, 문방구가 8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방구야, 우리 집안은 대대로 화마와 싸워온 멸화군 가문이다. 나 또한 조상의 가업을 물려받아 최선을 다했다. 너도 이제...”

문사철의 할아버지인 어린 문방구는 늘 화마와 겨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멸화군 복장-소방박물관



 화마와 싸우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문사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멸화군이었던 가문과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버지, 저는 화마가 싫어요, 아버지를 앗아간 화마가!”

 그러나 문사철의 할아버지는 싫었다. 어린 문방구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 화마는 정말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작 그만, 일시 정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