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안 Apr 29. 2023

우리는 늦지 않았다

20대니까 할 수 있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나 뭐 하고 살지?"

20대 중반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졸업을 하거나 취직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은 당연해졌다.

진로 결정에서 시작된 걱정은 어느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언제까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길에서 압박감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중2병보다 대2병이 심한 것은 사회로 화를 분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괴감으로 밀어 넣어서인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10대의 후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공부하기에도 바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와 학과, 직장에서도 많은 친구들은 "이제 와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라고 말한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이야기하는데, 20대가 늦었다니.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선택이라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고, 꿈과 인생의 방향성 빠르게 결정해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다.


가끔 이렇게 조급해질 때면, 나는 아빠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재수를 결정할 때도, 번아웃이 와서 지쳤을 때도 그랬다. '늦지 않았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과정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아빠는 집안이 가난했다. 학교에서 회장이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요구하는 촌지를 주지 못할 정도였다. 부도 잘하지 못했지만 고2 때 재미를 느 전교권까지 성적을 올렸다.


아빠는 사람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집안 형편이 안 좋았기에 돈 버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공무원 자격증을 준다에 들어갔다.


아빠 학교생활이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공무원 자격증은 오해라는 걸 깨닫고 더 절망스러웠다. 방황하다 결국 학사경고까지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자퇴서를 들고 간 과사무실에서 한 학기만 더 다녀보라는 권유에 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빠는 졸업하고 무난한 직장에 취직을 했다. 이것이 사회생활이겠거니 하며 닌 회사는 생각과 달랐다. 돈을 많이 벌지도,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동창회에서 만난 어떤 선배의 추천에 법무사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4년의 시험 준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 끝이 어딘지 모르는 공부 중에, 나는 자꾸 커가고 동생도 생기면서 아빠의 불안감도 같이 커졌다. 4년째에는 밥 먹는 것도 잊고 공부만 했다. 마지막 시험을 본 다음날은 바로 회사 면접에 갔다고 한다. 집안 가장으로서 더 이상 공부는 무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합격을 했다. 지금까지도 법무사로 아빠는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서론이 길었다. 나는 아빠가 진정 자신의 인생을 산 것이 이 시기 이후라고 생각한다. 법무사로 자리를 잡고 나서 말이다.

아빠는 나와 동생이 어느 정도 크고, 안정되고 나서야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했다.

취미로 목공예와 헬스를 배우고,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제는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컨설팅도 한다. 어떤 휴일에는 몇 시간씩 논문만 들여다보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한다.


아빠는 이런 공부를,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가끔 술 마시고 집에 와서 대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하듯 이야기도 하고, 배운 내용을 공유하는 날도 있다.

아빠는 이렇게 또 미래를 그린다. 이제는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말하고 진행한다.


우리는 인생을 처음 산다. 실수할 수도 방황할 수도 있다. 이게 내 방향이라고 정했어도 계획대로 될 가능성이 높지만은 않은 것 같다. 꿈이 바뀌지 않는다는 법은 없으니까. 또 내 노력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주변인과 상황에 우리는 꽤 큰 영향을 받는다.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은 쉽지 않다.


그런데 늦었다는 말은 참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루고 포기하다 결국 더 늦어지게 한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발견되기도 하고,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생기는 게 꿈이기도 한데 말이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시작되는 순간은 다 다르기에, 가끔은 불안해하고 절망도 하며,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이 말이 20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래도, 아니라 해도. 적어도 불안감에 휩싸여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어버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