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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안 Mar 29. 2023

신림동의 끝나지 않던 계단

1화

"엄마, 안아주세요."

계단을 오를 때마다 4살의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동화를 한 개, 두 개, 어떤 날은 세 개 이야기해 주어도 집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파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나는 엄마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안기겠다고 두 팔을 벌리는 딸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안고 올라가던 엄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그때 는 보지 못했다.

.

'신림동 고시촌'

온갖 유흥업소와 하숙집, 고시생들로 가득했던 이곳의 한 빌라 4층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30살의 나이였다. 일찍이 교사가 된 엄마는 육아휴직도  학교로 나갔다.


부모님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던 단칸방에 나를 오래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돌이 되기 전 어린이집 보다.


나는 매번 마지막까지 어린이집에 있었다. 엄마가 나를 찾으러 갈 때면 어린이집은 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 소리에 엄마는 울컥했다.


아빠는 나를 보며, 엄마를 보며 시험에 무조건 합격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엄마의 친척집에 가면 아빠는 괜히 눈치가 보여 못 먹는 회도 주는 대로  눈물도 삼켰다. 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는 바퀴벌레를 잡고 또 잡았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부모님의 힘겹고 어려웠던 뒷 이야기는 성인이 되고 함께 술 한 잔 하면서야 들었다.

내가 그때에 대해 기억하는 건 오직 재밌는 동화와 계단, 엄마의 품 속에서 흥얼거렸던 것뿐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계단을 올라가던 통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함께 한 시절모두가 다 같은 기억을 할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악착 같이 살아왔음에도 부모님은 내게 미안함을 느낀다.

정작 각자의 그 시절은 웃으며 억하면서. 모르는 사이 고난은 추억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삶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이 있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때도, 기죽어서 그 어려움을 못 드러낼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노력의 끝은 반드시 있다. 결국에는 웃으며 말할 그 순간을 기억하자.


가끔은 힘들 때 흥얼거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며 올라가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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