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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안 Apr 02. 2023

밤하늘에 뜬 빨간 태양

2화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아빠 참여 수업'이 있었다. 하루 아빠들이 유치원에 와서 함께 놀이를 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우리 아빠도 행사에 참여했다.

한창 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아빠는 즐겨 입던 빨간색 패딩을 입고 유치원에 도착했다. 엄마가 산후조리원에 있던 시기라 빠도, 나도 유치원에 함께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치 아빠만 모르는 드레스 코드가 있었던 것처럼 다른 아빠들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깔끔하게 입은 옷, 멋을 부린 사람들 사이에서 후리한 차림의 아빠는 머쓱했다. 괜히 나를 바라보며 미안함을 느꼈다. 행사가 끝나고 공부를 가려고 편하게 입었는데, 우리 딸이 기죽진 않을까. 실망한 건 아닐까.


한참 복잡한 마음이 드는 와중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첫 순서는 '아빠 선서'였다. 하루간 즐겁게 아이들과 놀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대표로 선서할 사람을 골라야 했던 원장 선생님의 눈에는 빨간 패딩을 입은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거기 빨간 패딩 아버님, 나와주세요."


아무래도 쑥스러운데, 모두의 시선이 아빠에게 꽂혔다.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시선을 느꼈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아빠의 반도 안 되는 꼬마의 눈에는 꼬마들만 보였다. 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아빠가 머쓱해하며 나갈 때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자랑을 했다. "저 사람이 우리 아빠야! 대표가 우리 아빠라고!"


그날 이후 에게 빨간 패딩은 자부심 되었다. 평소처럼 공부를 나가는 아빠도 더욱 빛나보였다.


가끔 쭈구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부족해 보이고, 못나 보이고.


하지만 동화를 봐도 그렇다. 주인공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미운 오리새끼도, 루돌프도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듯이.


밤하늘의 빨간 태양도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고민했을 것이다. 럼에도, 태양은 빛난다.


오늘도 우리가 주인공이다. 그 사실을 나 자신이, 타인이 부정한다 해도 우리는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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