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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안 Apr 13. 2023

히어로란

"엄마, 이거 마시면 나도 히어로 된대요!"

꼬꼬마 시절 광고에 나오던 곰돌이는 음료수를 꿀꺽 마시고 히어로로 변신해 하늘을 날았다.

나는 히어로가 되어 멋지게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그 음료를 샀을 때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내복을 나름 차려입고, 보자기를 두르고 식탁 의자에 선 나는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점프를 했는데,

바닥이었다.

나는 날지 않았고, 히어로로 변신하지도 않았다.

너무 적게 마셨나 싶어 더 마시고 뛰어도 보고, 곰돌이가 한 멘트도 해봤지만 그대로였다.

나는 그때 히어로는 곰돌이만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히어로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우리 엄마다.

뻔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릴 땐 어른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저녁을 차리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흙먼지에 뒹굴어 더러워진 옷들을 매번 손빨래하는 것은 온몸을 후들후들 떨리게 했다.

엄마는 이 모든 일들을 해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히어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아빠도 엄마를 히어로라고 한다.


내가 2살이 되던 해 아빠는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가 혼자 돈을 벌어야 했고, 나는 너무 어렸다. 시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이어서 더 힘들었다.

3년 차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우리 집안에는 새 생명이 찾아왔다.(현재 우리 동생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시험을 그만두고 다시 직장을 다니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은 아빠의 꿈만을 생각할 수 없다고 느껴서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를 믿었고, 가정을 위하여 꿈을 포기하게 둘 수 없었다.

아빠의 군대를 기다렸듯, 끝은 있다며 이왕 시작한 김에 정상에 오르라고 엄마는 말했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겠다고.

엄마의 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응원 덕에 아빠는 4년 차에 시험에 합격하였다.

우리는 각자의 히어로를 가진다. 그게 누구일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꼭 하늘을 날거나 변신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히어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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