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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에필로그

by 해안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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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말은 듣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다. '편안할 안'과 '편안할 녕'으로 구성된 이 단어는 말 그대로 편안함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길었던 브런치북의 마무리를 모두에게 안녕을 빌며 시작해 본다.


불편함이 당연한 때가 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뿐인 시기였다.

한참을 같은 주제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신이 있다면 나를 왜 살렸는가.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서웠다.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의 일부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 의미를 찾으려 했다.

주변사람들은 내게 사고 당시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의미를 부여하려면,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면 단순 사고였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사고 이전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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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길을 가다 거울을 봤다. 그날따라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나를 보던 시기였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이 쌓아진 많은 것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완벽을 추구했으나,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항상 변수가 생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민은 내게 2차적인 고통을 안겼다. 해소할 방법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저 미뤄두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고쳐야 하는 사람이라고, 옭아맸다. 거울을 보는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왜 나는, 왜 그러냐고.


이제야 다른 방향으로 묻는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지난 8개월간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

웃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었고, 안 넘어지려고 조심해도 넘어졌지만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

의미를 부여하려 한 나는 살 이유를 찾고 싶었구나. 그만큼 괴롭고 힘들었구나 나를 위로한다.


지금도 무서운 것 투성이이고 다 낫지 않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나를 탓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빗속에 들어가 본다.


방을 푸른 톤으로 꾸몄다. 우울이 나를 감쌀 때에는 그 blue가 내가 아니라 방안의 것이라고, 나의 우울은 금방 지나갈 수 있도록.


살았다. 살아진다.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옳고 그름이 없이 지나가는 것이 삶이다. 나도 그렇게 따지지 않고 흘려보낸다.


마지막은 언제나 애틋하다. 이 브런치북을 끝내는 기분도 묘하다. 하지만 나도 괴로웠던 나를 떠나보내줄 때가 되었다. 다음 챕터를 꾸밀 것이다.

이 글들을 쓰는 동안 꽤 힘겨웠다. 가끔은 회피하고 싶었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그러나 결국 끝을 맞이한다. 이 글을 끝으로 한동안은 나에 집중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럼, 모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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