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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감정을 삼킬 수가 없다.

by 해안

아빠와 부산에 여행을 왔다.

전 날 잠을 못 자 피곤하다며 연신 눈을 깜박이는 아빠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봤다.

사고 이후 자주 본 얼굴이다. 그제야, 우습게도 이제 와서야 아빠는 내가 다치고 얼마나 많은 잠을 설쳤을까 생각을 했다.


사고가 난 날, 내가 다쳤다는 말에 아빠는 맨발로 뛰어내려 갔다. 아빠가 운전을 못할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서 구급대원은 동생이 운전할 것을 권유했다.

내가 다친 모습을 본 순간부터 아빠의 마음은 내가 있던 난간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모른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말하던 아빠는 내 앞에서 울컥이는 목소리를 누르며 웃었다. 매번 밝게 나를 대하려 하던 아빠의 눈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날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꾸벅이던 아빠의 모습을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난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아빠의 감정만큼은 모른 척하려 했다. 너무나 크고 복잡한 그것을 내가 가져오기가 무서웠다. 줄어들지를 않는 수많은 생각들을 아빠는 온몸으로 받아냈다.


아빠는 매일 같이 나를 보러 왔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의 병원에 있을 때에도, 면회시간이 짧아도. 직접 하는 것이라고는 숨 쉬는 것밖에 없는 딸을 보려고 왔다. 나 대신 잠을 줄이고 타인에게 힘든 모습은 숨겼다.


걸음이 빠른 아빠의 속도는 내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릴 적 양갈래로 머리를 묶어달라고 떼쓰던 것처럼, 사춘기 때 내 방을 왜 건드냐고 짜증 냈던 것처럼, 아프다며 예민함을 심하게 드러내는 내가 미웠을 텐데도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려줬다.

힘들 때 주저앉으면 아빠는 함께 털썩 앉으며 "이거 봐! 멈춰도 아무 일 없어!"라고. 혼자 가는 길이 무서워 뒤돌아보면 "뒤돌아와도 돼. 언제든 여기 있어!"라고 해줬다. 그 말을 하는 아빠는 항상 미소 지었다. 그게 너무 든든해서 혼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친 후 처음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었던 날을 기억한다. 장난스레 "결혼하면 이런 느낌이려나~"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느끼고 있었다. 둘 다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평범한 함께 걷는 걸음에 평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조용해졌다.


언젠가 아빠가, 인생의 주인공이 본인이 아니라 생각하면 덜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이 꽤나 슬프게 와닿았다.

아빠는 감정을 삼킬 수가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감정을 꾸역꾸역 억누르고 집어삼켜서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로, 아빠는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을 내게 쏟았다.

아빠가 내게 주는 마음 모두가 사랑이라 가끔은 많이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곁에서 아빠가 곤히 잠에 들었다. 고됨이 느껴진다. 아빠의 얼굴은 자주 봤지만 마음은 보질 않았던 지난 날들. 이젠 내가 아빠의 감정을 덜어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아빠 인생의 주인공은 아빠였으면 좋겠다. 못난 딸에게 몇 개월만 빌려줬던 것이다. 이제는 돌려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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