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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에 적응하는 법

by 해안

사고 이후 8개월,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인간관계'라고 말하겠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병원은 하나의 세계였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배움이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을 대할 때 가면을 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사회성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수술이 끝나고 재활병원에 가서 나는 정말 다양한 카테고리의 사람을 만났다. 업종에 따라서는 간호사, 의사, 치료사, 간병인, 환자, 보호자.

성격에 따라서는 내향적인, 외향적인, 현실적인, 직관적인, 감정적인, 이성적인 사람 등. 나의 병원생활 적응기는 이 제각각인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했다.


덜컥 겁먹어 초반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굳어있었던 것 같다. 한 환자분은 입원 초기 나에 대해 어떤 말에도 반응 없던 어린애였다고 말한다.

특히나 병원에서 나는 이목이 집중되는 환자였다. 어린 편이기도 했고 온갖 보조장치를 몸에 하고 있었으며, 입원하고 일주일간은 치마였던 이전 병원복을 갈아입지 못해 눈에 더 잘 보였다. -치마는 옆부분에 단추가 있었는데, 재활병원복은 상하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병하시는 분이 혹여 보조기를 풀었다가 내가 다칠까 싶어 건들지 못했다.-


병원생활 첫 번째 고비는 병실에서였다.

사람의 있는 그대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나는 잠결, 잠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방비 상태가 되는 그때를 타인에게 내비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렸을 땐 수련회, mt가 싫었다. 일부러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그 같은 내 가장 편안한 상태를 누군가와 무조건적으로 공유해야 하는 다인실서의 생활이 쉽지가 않았다. 자서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내게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도 꽤 힘들었다.

두 번째는 치료실에서였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면서, 너무나 다양한 환자를 보면서 적어도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치료사선생님들이 덜 힘들기를 바랐다. 내가 아프거나 힘든지 여부는 발이 움직이는지를 보면 된다고, 쌤들이 우스갯소리했던 기억이 난다. 참을 수 있는 건 참으면 되니까,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생활을 하며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잘 웃는 모습으로, 경청하며 피해 안 끼치기. 당연한 듯한 이 행동들을 계속하다 보니 피로도가 꽤 쌓였던 기억이 난다. 내 감정과 컨디션을 뒤로하다 보니, 뒤늦게 몇 번씩 무너지곤 했다. 어느 날 감정을 주체 못 해 펑펑 울자 당시 간병인분이 내게 말하기도 했다. "잘했다"라고.

어떻게 웃으며 버티냐고, 힘들 땐 울어도 되니까 참지 말라고 했다. 나를 보면 너무 웃어서 안쓰럽다고 말했다. 마음의 병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며 옥상 산책을 하며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좀 더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 시작한 건 시간이 많이 많이 흐른 이후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안 하든 병원은 소문이 빠르게 돌고, 그만큼 와전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 내 모습 그대로 지내도 날 좋아해 줄 사람은 좋아해 준다는 것을 안 날.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속에서 돌아다니며 나 자신을 찌른다는 걸 느낀 날.

그 나날들이 모여 나는 좀 더 나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라식을 하고 헤드셋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옷과 장신구들을 하며 갑갑한 병원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가졌다. 또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마주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거나 내 경험을 나눴다. 기분 나쁜 말엔 기분 나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다른 환자분들도 더 즐겁게 도울 수 있었다. 휠체어를 끌어드리거나, 간식을 나눠먹고 식판을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고마움의 인사에는 "나중에 나으면 저처럼 다른 환자분 도와주실 거 알아요."라고 말하는 여유도 생겼다.


많은 시간들이 나를 나아가게 만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입원을 한 기간 동안 내가 배우고 바꿔 온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의 나를 어떻게 만들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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