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여러 방식이 있다.
나는 주로 예술활동을 즐겼다.
글씨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시련에 갇혔을 때도 나는 깨작깨작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치며 마음의 빈 부분을 채워나가곤 했다.
피아노,
피아노를 오래 배웠다. 7살부터 고2까지, 체르니 50을 끝내고 유명 작곡가들의 악보집을 섭렵하기 시작했었다.
내게 피아노는 시각, 청각, 그리고 특유의 향으로 후각까지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나의 어려움이 그 순간엔 잊히곤 했다.
집의 피아노가 조율이 되지 않아 뚱땅뚱땅 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좋았다. 내 모든 감정과 감각이 집중되고 어느새 난 내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사고가 나고 움직이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 적응하고 체념하던 기간이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내가 왜 이러냐고, 천장만 보며 쉴 새 없이 울다가도 눈물조차 닦을 수 없어 황당함에 표정을 잃었다. 일반병동으로 옮기고 나서도 멍했다.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일 때가 되어서야 체념이 약간의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즈음 꿈을 꿨다. 피아노를 치는 꿈이었다.
나는 피아노를 치고, 물결이 흘러가고 그 위를 친한 친구들이 춤을 추듯 타는 이상한 꿈. 너무나 비현실적인데,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상상이었다.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당시에 어떤 음악도 내게는 소음이었다. 한창 유행하던 노래가 뉴스에서 나와도 머리가 아팠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나서는 좀 달랐다. 음악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피아노 음을 생각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끝들과 움직인다 착각하는 손가락들로, 나는 한 곡을 허공에 치곤 했다.
집에 가면, 언젠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피아노 조율부터 해야지 생각했다.
내 손이 피아노를 치기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대략 4개월이 지나 집에 와서야 깨달았다. 손을 올렸는데 손가락이 편하게 구부러지거나 건반이 눌리지 않았다. 왼손이 특히 그랬다. 사고 이후에 달라진 것들을 체감하고 그에 따라 마음이 내려앉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기억에 남는 한 경험이다.
피아노 치는 것을 주된 상황으로 잡았지만 오른손의 기능이 거의 돌아온 지금, 왼손의 불편함만으로도 생활의 부족함을 느낀다.
기본적으로는 핸드폰 사용, 사진 찍을 때 포즈를 취하거나 박수를 치는 사소한 행동부터 짐을 나르거나 물건을 꺼내는 일까지 손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는다.
다른 신체부위보다도 손, 손가락은 미세한 신경다발들이 많아 재활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내 손도 꽤나 그럴 것이다.
살면서 어떤 것도 쉬이 해낸 건 없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어려웠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것도 무던하게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해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조율이 안된 피아노도 행복하게 치며 꿈을 꾸던 그때처럼 살짝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