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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by 해안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간병하시던 분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잠버릇은 없는데 가끔 엄마를 애달프게 부르더라."


우리는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애틋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 전에 엄마는 일과 가사로 바빴다. 난 또래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갔다. 엄마는 힘든 와중에도 나를 챙겼다. 놀이터에 나갈 때엔 친구들과 잘 어울리라며 간식을 쟁여주었고, 그 와중에 남들만 챙기는 내가 안쓰러워 입안에 몇 개씩 넣어주곤 했다.

유치원에도 늦게까지 남아있는 나를 데리러 올 때 빈 손인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쁨 받으라고 나와 관련된 엄마의 하루는 항상 부탁이었다.


우리의 하루는 대화로 가득했다.

나의 하루에 대해 묻는 엄마에게 쫑알쫑알 답했던 기억들이 난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며 한편으로는 내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의존했다. 겁이 많았기에 밤에도 엄마 곁에 있으려 했고, 대부분의 결정을 엄마에게 맡겼던 것 같다.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할 때, 그리고 동시에 사춘기라 불리는 때가 왔을 때 나는 타인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처음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난 나의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 전파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시에도 엄마에게 내 힘듦이 다가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좋은 딸이고 싶었다. 딱히 사고 치지 않고 도움이 되는 딸이고 싶었다. 어려운 일은 혼자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와는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공황장애가 심해지고 잠을 못 자는 시간이 늘면서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오히려 줄였다. 일상처럼 조잘댔던 내 하루에 대한 엄마의 관심도 부담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게 되는 나의 아픔이, 엄마마저 무너뜨릴 것 같아 두려웠다. 남들에겐 강해 보여도 내겐 약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여러 이유로 사고 이전에 독립을 말했고, 걷잡을 수 없는 서로의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 엄마의 서운함이 보여도 난 의도적으로 모른 척했다. 마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날 챙겨야 해. 여기서 더 무너지면 안 돼. 이제는 내가 해결할 때야.

그게 내 생각이었다.


사실 엄마한테 기대면 자꾸 기대고 싶어서,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피했다. 겨우 헤엄치다가 가라앉을 듯해서. 무의식 중에도 엄마를 끊임없이 부르는 내가 엄마만 찾을까 봐.


사고 직후 엄마는 침착하게 가족을 챙기고, 나를 받아주지 않던 병원에 읍소를 했다. 수술 전후로 내가 의식이 있을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날 맞이했다. 겁에 질린 나를 안정시키고 묵묵하게 챙기다가, 내가 없을 때마다 무너졌다.

너무 지치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차라리 내 곁에 오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가 그려온 모녀관계의 일부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관계를 고민하면서.


나는 엄마와 다른 점이 많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도 선호하는 음악이나 생활패턴도 다르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다.

엄마는 관심과 표현으로 사랑했고 최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려고 하는 반면, 나는 좋은 것만 남겨주려고 했다.


엄마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내가 있다. 리는 다른 만큼 닮았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난 엄마의 사랑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큰 마음속에 산다. 절반의 반이라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딸이 되어야지, 나아수록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음 생엔 나 같은 딸 만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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