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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웃어넘길 수 있다면.

4. 재활병원

by 해안

요즘 재활치료를 다니다 보면 환자분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걷게 될 무렵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무엇을 더 했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답변을 하다가 가끔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나도 걷는 사람들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어떻게 걸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걷는 분들이 부러워 치료사님들에게도 내가 뭘 더 해야 하는지 물어본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대답하고 있는 나를 보면 우스우면서도, 이 답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된다.


사고가 난 지 6개월, 재활을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

3주를 누워만 있었고, 3개월을 휠체어로 다녔다. 혼자 돌아다닌 건 2월 초, 대여한 휠체어를 반납하고나서이다. 재활속도가 빠른 편인가 보다. 최근 신경외과를 방문했을 때 의사 선생님도 놀랐다. 이번 화에서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휠체어를 타며 내가 느낀 점과, 노력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휠체어를 타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바퀴를 직접 굴리거나, 누군가 그걸 끌어준다면 그것대로 신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코어근육에 힘이 없고, 허리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휠체어를 타니 자꾸만 몸이 흘러내렸다. 또, 잠깐만 아있어도 몸이 배겼다. 푹신한 방석을 깔고 있어야 그나마 덜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처음 일어서지도 못하는 나를 침상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치료실로 옮기는 일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숙련된 이송기사님이나 치료사님들은 내 다리를 본인 다리 사이에 끼우고, 바지춤을 잡아 옮겼다. 그러나 모든 게 처음인 우리 가족은 두세 명이 달라붙어 내 상체와 하체를 지탱해야 했다.

날 포함해 가족들도 땀을 흘리고 긴장할 때면, 그게 괜히 더 힘들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더 나아지기까지는 최대한 회피하고자 하고 있지만, 마음이 시큰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이후에 폭풍처럼 몰아닥칠지도 모르겠다.


휠체어를 타고 근처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연말 즈음이었다. 가는 길, 부서진 보도블록들은 많이 울퉁불퉁함을 느꼈다. 머리가 흔들려 멀미가 났다. 모자도 눌러썼는데,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거리에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내가 지금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배리어프리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렇게 경험하고 나니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휠체어만 타고 있어도 하기 어려운 것이 가득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되기에,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는 지속적 실천이 필요함을 알았다.


외부에 나갔다 오는 횟수가 늘수록 재활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운동치료시간 초반에는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연습과, 누워서 다리를 들어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했다. 재활 이외의 시간에도 동생이 오면 치료실에 가서 연습을 했고, 없을 때는 침대에서 다리 아래 이불을 깔고 움직였다.

물론 잘 안 됐다. 어려웠다. 내 다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색했다.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에 힘을 가득 주고, 다리를 어떻게 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옮길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것 또한 그동안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행동들이었다.


그렇지만 매일 반복되는 재활치료와 개인적인 작은 노력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부축받아 걷고 계단을 오르며, 12월에는 한두 번만에 스스로 일어서기 시작했고 1월에는 아빠손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의지가 필요한 것도 맞는 말인 듯하다. 나는 지칠 때에도 하던 것은 마저 하고 쉬었다.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남들이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혼자 해보려고 노력했다.

또 내 성격도 한 몫했는데,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럴 일이 없도록 하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된 부분도 있다.


물론 이런 나도 꽤나 자주 엎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스텝이 꼬이거나 무릎이 꺾이기도 했다. 처음에 넘어졌을 때는 소리도 못 질렀다. 너무 놀라 식은땀만 흘렸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였는데 다들 당황한 기억이 난다.

그 경험 이후 난 언제나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전거 탈 때 넘어지며 균형 잡는 연습을 하듯, 나도 그런 과정을 거칠 뿐이라고.

그래서 우당탕 넘어지고 나면 잠시 앉아서 힛 하고 웃었다. 난 또 새로운 스텝을 밟았구나, 이렇게도 넘어질 수 있구나 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난 앞으로도 부족한 점을 느끼고, 내가 아직 못하는 부분을 깨달을 것이다. 넘어지거나 흔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무너진 발자국이라도 내딛는다면 난 또 정상을 향해 가고 있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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