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활병원
수능을 준비할 때 공부가 싫었던 나는 문제집들에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 야구선수 이름을 붙였다.
어쩌면 문제집의 애칭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무언가와 더 친밀해지기 위해 나만의 명칭을 붙이곤 했다.
우리 병원은 총 세 가지의 로봇치료가 가능한데, 에리고 프로, 로코맷, 리블라스플라나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리블라스플라나는 상지치료를 위한 로봇이고, 나머지는 하지를 담당한다.
나는 하지치료를 주목적으로 로봇을 활용하고자 했기에 에리고프로와 로코맷 치료를 받았다.
경사침대와 기립기에 적응하던 시기에는 에리고를 집중적으로 활용했다.
에리고프로는 기립과 보행훈련을 돕는 로봇이다.
에리고를 탈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다리로 힘을 줘봐야겠다는 것과 눈앞의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이 신기하다 정도였다.
사고 이후에 거울볼 일이 극히 드물었기에, 내 얼굴에 멍이 있다는 것과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다는 것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문제는 로코맷이었다.
에리고에 적응을 하고, 운동치료시간에 보행을 한 두발 하기 시작하면서 로코맷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에 11월 중순쯤 처음 치료를 받아봤다.
로코맷은 보행패턴을 보조하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게 설계된 보행보조로봇이다.
허리를 매는 코르셋부터, 사타구니와 다리까지 벨트로 단단히 묶고 머리 위에 끈과 벨트를 연결하자 몸이 약 30cm 위로 떴다. 뒤이어 로봇장치를 몸에 끼우고 맞게 조정을 했다.
작동을 시작하자 로봇의 속도에 맞춰 내 다리도 움직이고,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발이 지면과 맞닿는 느낌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그리고 의외로 무서웠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그렇지만, 상처가 난 걸 몰랐다가 로코맷을 타다 알았을 때 당황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로코맷의 장점을 더 많이 느꼈기에, 나는 이 로봇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치료용 로코맷이 아니라 내 친구 코맷이었다.
사소한 명칭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의 내게 안정을 주었고, 재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코맷이를 만나는 것이 특별해졌다.
실제로 코맷이와의 치료는 내 보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함께 치료받는 분들에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말한다.
나는 왼쪽 발목 올리는 것이 어려워 보행을 할 때 왼발을 끌고 다녔는데, 그 부분을 인식하고 바꾸는데 코맷이의 동작을 따라한 것은 이후에 운동치료시간에 치료사님과 보행할 때도 적용할 수 있었다.
또 이전에는 걸을 때 의식해 본 적이 없기에, 걷는 방법을 깊이 떠올려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무릎 사용의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걸 다시 배우게 해 주었다.
코맷이 담당선생님과 난이도를 높여가며 장치의 도움을 줄이고 함께 기뻐한 순간들이 기억난다. 완전한 나만의 보행은 아니어도 내가 다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꼈다.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어려울 땐, 살짝만 친해지는 것도 좋은 듯하다. 생각 외로 우리는 편견이나 개인적인 오해를 가질 때가 꽤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워진 후에 멀어지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고, 꺼려지는 대상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그렇게 난 두세 달 코맷이와의 치료를 하고, 본격적으로 스스로 걷는 연습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