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활병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해세
"여기는 비정상인 게 정상이잖아."
병원 엘리베이터 문이 잘 닫히지 않던 날 한 환자의 보호자 분이 한 말이다.
맞다. 병원이다. 나는 환자고.
생각보다 자존심이 센 편이다. 누군가 나를 안타깝게 보는 시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복을 입고 할로베스트에 소변줄을 한 채 휠체어까지 탄 사람을 걱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는 이들은 그다지 없다. 그것이 그들의 배려이자 위로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마음이 힘든 와중에는 그것이 본인의 상태에 대한 안도감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날 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처음 치료사 분들을 배정받고, 민용쌤을 봤을 때 또한 체념하고 있었다.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모두가 비슷할 테니까.
정신없음과 낯가림, 본능적인 선긋기를 초점 잃은 눈으로 드러냈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묻는 민용쌤에게 "핸드폰 하기요."라고 답하며, 쌤이 쌓아가는 치료의 방향성을 한 발 뒤에서 봤다.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그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건, 그가 무언가 덜 하고 더 해서가 아니라, 그저 잔잔한 눈빛 때문이었다. 어떠한 감정이 크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쌤의 사소한 말과 행동은 그가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 여긴다고 느꼈다. 그와 있을 땐 내가 딱한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났다.
치료 차원에서도 "이것도 안되네?"가 아니라, "이렇게는 어떨까?"라고, 부족함을 일깨우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건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힘이었다. 내가 무리하지 않아도, 억지로 참고 견디지 않아도 해낼 수 있다고.
민용쌤의 책임감이 강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다. 나와 재활을 하고, 다음날 다시 치료시간이 돌아오면 그는 본인이 전날 본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알려주곤 했다. 내 상태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불안감이 꽤나 해소되었다.
지나가듯 한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몸상태나 하고 싶은 것들도 기억하고 치료에 적용했다. 난 기억도 안 나는, 날 낫게 하겠다고 쌤이 무심코 한 말에조차 사명감을 가졌다.
20대의 SCI환자를 맡는 것이 부담이었어도, 자신의 쉬는 시간마저 투자하며 헤쳐나갔다.
쌤과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어느 순간 한 두발 부축을 받아 걷던 것을 기억한다. 내 발이 바닥에 닿고, 다리를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을 때의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 감격을 같이 하고 있는 쌤을 보며, 나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믿고 있구나 느꼈다.
민용쌤을 만나고 나는 웃음이 많아졌다. 쌤 덕분에 재활속도가 빨라져서도 있지만 내 변화에 함께 즐거워해주고, 그럼에도 매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뻐해주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해주는 것이 더 많음에도 내 작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고마워해주는 것도 편안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치료뿐만 아니라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밝아졌다.
쌤과 진지한 대화도 자주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속이 깊은 사람임을 느낀다. 아, 이런 모습이 어른스럽다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무수한 고민에서 나왔음을 알았다.
클로버는 원래 세 잎이어서, 네잎클로버는 희귀하기에 발견하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용쌤은 내게 네잎클로버 같은 사람이다. 우연히 마주쳐서 더 소중한, 병원에서 만난 행운이다.
대부분도 행운을 바라기에, 그런 네잎클로버를 찾으려 한다. 특별함에 그의 진심과 고민은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론 타인의 행운을 위해 본인의 행복은 미뤄진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나아짐은 어쩌면 그의 그런 희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해서 더 노력하는, 그렇게 나를 걷게 한 치료사를 만나 따뜻한 봄을 체감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느낀다. 진심을 다하는 사람을 곁에 두게 된 것에 감사함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