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동생은 나와 5살 차이가 난다.
5년은 생각보다 길다. 그 간격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어리다고 느끼면서도, 난 누구보다도 동생에게 의지했다. 닮은 점도 많았지만 배울 점도 상당해서였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든 날마다 내 발걸음은 동생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침대에 앉아 주절주절 떠들었다. 난 동생이 가만히 듣고 있다 툭 던지는 한 두 마디에 위로를 받고, 생각도 정리하곤 했다.
동생은 능동적인 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척척 해냈다. 꿈을 꾸고 펼쳐나갔다. 무언가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멋있었다. 동생은 내 자랑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매번 장난스레 "내가 죽으면 내 모든 건 너한테 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난 동생이 더 큰 사람이 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사고당일, 카톡으로 동생에게 모든 걸 남긴다는 말과 함께 미안함을 보냈다. 그게 무의식에서 나온 진심이었다해도 설명할 수 없는 덩어리로 가슴에 남아있다.
동생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족을 지켰다. 집 앞에 누가 찾아왔을 땐 잘 돌려보냈고, 내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연락을 대신 받았다. 내가 벌린 일들도 수습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집안에 집중하고자 한동안 학생회를 그만뒀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나를 마주했을 때도 울지 않았다. 걱정 말라며 되려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을 듣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동생은 자주 왔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나를 고려해 매번 케이크나 빵을 사 왔다.
본인은 나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논문을 읽었으면서도, 내 앞에서는 티 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챙기겠다며, 앞으로는 걱정 말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재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시간을 내 병원을 들렀다. 커피와 디저트를 들고. 겁먹은 내게 용기를, 지쳤을 땐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나 주말, 저녁에는 재활을 도왔다. 치료 실장실을 방문해 건의하고 치료사님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물으며 내 재활을 함께 해나갔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내가 안정되길 기다려주고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했다. 아프고 지치는 시기에는 그게 서운하기도 했다. 나름 노력하는데 그것도 몰라주나 싶었다.
사랑의 방식은 여러 가지라, 그게 동생의 방법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야기 중 사고당시를 회상하다 과호흡이 온 동생을 봤다. 현실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내가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에 훅 잠겼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나의 어린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윤호야. 누나가 곁에 있는 한 계속 어린 상태이면 안될까.
내가 더 아플까 봐 걱정돼서 잠 못 자지 말고, 힘든데 눈물 참지 말고.
눈에 실핏줄이 터진 네 모습을 보면 네가 지새운 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어.
맛있는 거, 가지고 싶은 거 누나니까 사달라고 장난치던 네가 요즘은 조심스러운 걸 느껴.
내 힘듦은 내가 감수할 문제였으니, 몰랐음에 자책하지 않아도 돼.
함께 걸을 때 아직은 느리고 어색해서 가다가도 네가 보폭을 줄여야만 하지만, 그래도 힘들 땐 기대고 미울 땐 미워해줄래?
넌 항상 내 자랑이고, 난 언제까지든 너의 누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