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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기립기

4. 재활병원

by 해안

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지닌 이들을 크게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된 것에도 미련 가진 경험이 그다지 없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해왔다.


그런 내가 휠체어를 타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작은 체구의 내가 엘리베이터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없이 날 위축되게 만들었다.

앉아만 있으니 사람들의 키도 가늠되지 않기 시작했다. 내 시야에선 바깥풍경도, 화장실 거울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기립기라는 기구가 있다.

말 그대로 립을 보조하는 장치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처음 기립기에 서 네 명의 치료사분들이 날 일으킬 때 나는 수술한 다리가 아프다 느꼈다. 게다가 힘없는 다리가 자꾸 풀려서 두려웠다.


그렇게 난 그전 단계인 경사침대로 옮겼다.

경사침대는 침대의 각도를 조정하며 서 있는 것에 익숙하도록 돕고, 다리 근력을 워줬다.

경사침대의 모습

그러나 첫날부터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기립성 저혈압이다.

경사침대의 각도가 45도 즈음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나는 어느 순간 눈앞이 까맣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깐 어지러운가? 하는 순간 실신했다. 급히 침대 각도를 낮추고 다리를 올려두고 나면 상태는 금방 호전됐다.

경사침대의 각도가 80도 이상이 되어야 기립기로 옮길 수 있다 했는데, 쉽지 않았다.

2주 정도가 지난 후에야 나는 기립기를 재시도할 수 있었다. 러 운동과 로봇치료로 기립에 익숙해진 이후였다.


기립기에 다시 섰을 때를 기억한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벽을 보고 서 있던 내 눈앞이 흐려지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때까지도 내겐 기립성 저혈압이 익숙하지 않아서, 공황발작이라 생각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 이후에도 때때로 내겐 공황발작이 찾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상비약을 먹기도,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불안 속 가슴이 답답한 증상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나는 움직일 수 없어서 주로 과호흡부터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천천히 숫자를 셌다. 메스꺼운 속, 흐르는 땀과 달리 식어가는 몸은 더 이상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주변엔 알릴 수가 없어서 자는 척하며 견뎠다. 내가 참으면 지나갈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기립기에 서서 어지러워지는 순간에도 말하지 않았다. 내 약점을 드러내기도 싫었을 뿐더러, 그 상황을 못 견디면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상태를 직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실신했다.

곧바로 치료사님이 날 붙잡았고 잠깐의 시간만에 정신을 차렸다.


이후에도 매일 기립기를 서는 시간은 꽤나 불안정했다. 어느 날은 5분, 어느 날은 20분.

순간 저혈압이 와 쓰러질 것 같아 앉은 날도 많다. 내 곁을 두 명 이상이 항상 지켰음에도 난 기립기를 제일 무서워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수술부위를 소독하고 실밥을 풀고 피를 뽑고, 아픈 것도 다 참고 불편함도 감수하는데 왜 이건 못해낼까. 왜 자꾸 쓰러지지. 겨우 몇 분 서는 걸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불안하지.


벽을 보고 서서 나는 그 '왜'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또다시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야 실마리를 찾았다.


같은 미지근한 물도, 따뜻한 물에 있던 사람과 차가운 물에 있던 사람이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내 몸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몸이 다시 일어섬을 받아들일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다 견디면 정신이 그랬듯 벗어날 거라고 단정 지었다.

참고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난 내가 가장 두려워한 기구에서 배웠다. 언제든 쉬어갈 시간을 주어도 됨을 알았다.


몇 주 기립기에 서 있으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까치발 들기, 손 운동하기 등 여러 운동도 병행했다. 담당 치료사분들이 만난 환자분들 이야기도 들었다. 너무나 싫어했던 기구이지만 그만큼 내게는 많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도 난 이때를 떠올리며, 어떤 문제에도 '시간을 갖자. 무리하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내가 날 몰아붙이는 순간 실패했을 때 더 큰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주는 긍정 한 스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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