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활병원
"하, 내가 쉬는 한숨마다 나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한 환자가 한 말이다.
재활병원은 그렇다. 혼자 자연스레 하던 것을 한순간에 못하게 된 사람들이 가득하다. 툭, 밑바닥에 떨어지면 좌절감이 뒤따라온다. 그렇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아질 일이 다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정상을 향해 가는 이들이니까. 그 사실을 본인은 믿기 어려울지라도.
재활병원에 온 지 어느덧 4개월이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 이 시간을 돌아보면 움직이지도 못하던 나는 1월 초 걸었고, 2월엔 휠체어를 반납했다. 혼자 음식을 먹고 씻는다. 취미를 즐기고 사람들을 만난다. 과거엔 당연했고 사고 이후엔 당연하지 않게 된 일이다.
최근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내가 이어나갈 글들이 누군가에겐 희망이자 힘이 되길 바라서이다. 처음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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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등포에 위치한 한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첫날은 평가가 있었다. 기본적인 내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춘 치료를 배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는 SCI(척수손상) 환자로, ASIA Scale 등급에 따라 C레벨로 분류되었다.
본격적인 치료 시작날, 나는 치료실만 가면 울었다.
치료실은 복잡했다. 평소에 사람 많은 곳은 알아서 피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큰 휠체어를 탄, 첫 등장한 날 쳐다보는 눈이 많았다. 그게 무섭고 불안했다.
그래서 재활병원에 간 이후 한동안 안경을 쓰지 않았다. 나를 보는 이들도 내가 보는 이들도, 그저 흐릿한 시야 속이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적응해야 했기에 나는 우는 것을 멈췄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 기댈 수 없었다.
나는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는데, 치료사들이 환자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침부터 분주함에도 웃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나 또한 혼자 있을 때 생각에 잠겨도 사람들과 만나면 웃었다.
웃음의 힘은 셌다.
"보조개 공주 왔다!"
한 할머니께선 나를 마주칠 때마다 웃는 게 예쁘다며 말했다. 부기도, 심지어 멍도 안 빠진 내가 실제로 예뻐서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웃는 모습이 좋아 보였던 듯하다.
웃음 지을수록 얼굴을 아는 사람이 늘었고 자연스레 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몇 개월 혼자 휠체어를 타고 내리기조차 힘들었을 때 내 이동을 도와주셨던 이송기사님은, 내가 감사하다고 웃을 때마다 그 웃음 때문에 더 빨리 나을 거라 말하곤 하셨다. 언젠가 혼자 휠체어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정도가 되어 도움을 받지 않게 된 이후에도, 손을 흔들며 인사하게 되었을 때도.
더 낫고 이송기사님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 봤을 때 아무 힘도 없이 새로운 공간에 와 겁먹은 듯했음에도 웃는 모습을 볼 때 남까지 챙기는 강한 아이임을 알았다고. 그래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나는 착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내가 힘들 때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 더 긍정적으로 살아봐라 하는 이야기가 싫었다. 어차피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들인데, 나를 바꾸라는 결말로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살아가다 보면 긍정적인 힘도 생기고 적응할 순간도 올 것이라 생각했다. 다 같은 속도로 이겨낼 수는 없으니, 다 다른 순간에 에너지가 생기더라도.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의 특성상 더더욱 즐겁게 적응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일단 내 마음이 앞을 볼 수 없는데 감정은 오죽할까. 그래서 도움이 될진 몰라도 웃음이 정답인 건 아니다. 각자의 적응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기분으로 인해 타인도 영향을 받는 것을 싫어한 특성에 우연히 깨달음을 얻은 것뿐이다. 억지로 긍정적일 필요도, 힘든 건 모른 척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기억이 내가 살아가는 데에 많은 부분에 변화를 줄 것이라 믿는다. 나에 대해 알아가고, 사람들 사이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이후에 차차 풀어가기로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