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반병동
"모든 먹구름에는 은색 테두리가 있대."
실버라이닝, 누군가 내게 자신은 이 은빛 때문에 먹구름을 유심히 보게 된다고 한 적이 있다.
구름이 진해질수록 더 빛나는 테두리. 그 말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더 이상 먹구름을 비 오려는 신호로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먹구름에도 빛은 있다고.
하루아침에 바뀐 상황을 '이겨내야겠다!'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내 상태를 파악도 못하고 있던 중이라 더 했다. 그래서 어떠한 동기, 이겨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 외로 단순하고 사소한 것에서 생겼다.
누나 동생입니다. 누나가 많이 다쳐 한동안 연락이 어렵습니다.
동생이 사고 이후 나 대신 올려준 카톡 상태메시지이다. 내가 연락을 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지만 핸드폰 켜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이미 내게 일상은 동떨어진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었던 날, 동생에게 핸드폰을 켜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수단으로 수백 통이 넘는 연락이 와 있었다. 일단 놀라서 핸드폰을 다시 껐다. 그럼에도 날 걱정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어 놀랐다.
도움을 받아 하루에 적으면 한 통, 많으면 두 세 통 지인들과 전화를 했다.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던 내가 그들과의 미래를 그리고 이전의 추억을 꺼내왔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점차 안정을 취했고 조금씩 빠르게 잠에 들기 시작했다.
2주 후 다리의 깁스를 풀고 처음 휠체어를 탔다.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누워있었던 시간이 길었기에 생각보다 어지러웠고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했다. 앉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었다. 그래서 매일 병원을 도는 시간을 늘리며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휠체어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병원 외부를 산책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시원한 바람을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맞으며 본 단풍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누워있느라 보지 못한 것들, 가을이 이렇게 예뻤나 싶었다.
얼마 후 왼쪽 검지와 중지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정말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친해진 간호사분들에게도 장기자랑을 하듯 보여드리곤 했다. 이 여러 일들이 기폭제가 되었다.
군 병원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재활치료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침상으로 물리치료사님이 오셔서 혼자 재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양을 천 마리도 넘게 세어보며, 무기력함을 크게 느꼈었기에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참 신기하게도 공부할 때의 습관이 재활에서 드러났다. 나는 뭔가에 오래 집중하진 못했지만 꾸준히는 잘했다. 재활을 할 때도 매일 움직임을 만들었다. 배운 운동은 200번, 300번 조금씩 횟수를 늘렸다.
잘되지 않았지만 당연하다 여기니, 안된 것보다 된 경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은 무엇보다 큰 보상이었다.
작은 움직임들은 하루하루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 갔다.
국군수도병원에서의 큰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된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재활일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