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반병동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천장을 봤다. 몬드리안의 작품 같은 네모들의 조합, 그게 왜 이렇게 안정적인지.
사고 이전에는 잠이 안 올 때 눈 뜨면 보이던 하얀 천장이 속을 답답하게 했다. 차라리 방청소라도 하면 나을까 싶어 애꿎은 서랍장을 뒤적뒤적, 알콜솜으로 책상을 박박.
그렇게 닦으면 나던 아릿한 향이 병실에 누운 내 팔에서도 진동을 했다. 부어서 보이지 않는 혈관을 겨우 찾으면 소독을 하고 주삿바늘을 꽂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내게 물었다.
"아프지 않으세요?"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견뎌야했던 건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이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물에 뜨는 연습을 하듯, 몸이 가라앉지 않으려면 바다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했다. 어떤 두려움이 닥쳐도, 감정이 요동쳐도 내 상황은 바뀌지 않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흘러가야 했다.
물론 금방 인정하고 적응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바다는 내 생각보다 더 넓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수면 위에서 내가 기댈 건 타인이었다. 기댄다는 것이 참 당연한 상태의 내게 제일 힘든 일이었다.
나서는 것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남이 해준 것을 마냥 받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내 일이 아니어도 내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안절부절 못할 때가 많았다. 한참 그랬던 시기에 내 어깨를 잡고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놓고, 내 눈 봐. 일단 심호흡해."
병동생활 며칠 후 내게 첫 간병인이 생겼다. 순자이모다.
모르는 사람이 내 모든 걸 대신 해준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나는 이모에게 나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이모의 눈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우리는 음식에 대한 관심사가 비슷했다. 딱히 즐거운 일이 없던 내게 이모가 해주는 음식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식사시간이 되면 후다닥 식판을 들고 와 메뉴를 신나게 읊어주던 이모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그 목소리에 웃음이 늘었고 활기가 생겼다.
몸이 안 좋았던 것에 더불어 우중충한 날씨에 힘이 없었던 날이 있다. 입맛이 없어 밥도 대충 먹고 잠겨 있었다. 그때 이모가 귤을 사 왔다.
어릴 적 열이 펄펄 끓을 때면 엄마는 내게 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곤 했다. 톡톡 터지는 알갱이들이 입안 가득 새콤달콤하게 채울 때면 다 나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모가 작은 귤을 까는데 향이 내 곁으로 퍼졌다. 그게 얼마나 상큼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웃음이 지어졌다. 어렸던 내가 느꼈듯 금방 나을 것만 같았다.
이모는 그렇게 내 기분을 함께 느끼며 디저트를 사주곤 했다. 너무 잘 먹어서 몸무게를 보고 눈을 번쩍 뜬 기억도 난다.
그렇게 나는 컨디션을 회복해나갔다. 이모와 처음 머리도 감고 휠체어도 탄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언젠간 식당을 차리고 싶다 한 이모와의 나날은 고요했지만 가을 단풍만큼이나 알록달록 했다.
이번 여름에는 강릉에 순자이모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다.
순자이모에게 기대 떠있던 내가 이젠 헤엄을 친다고 말할 날을 기다리며, 나는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