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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자 이선경 Mar 11. 2023

그림을 보는 혜안, 시를 읽는 지혜

시는 언어로 그려내는 그림이다

그림은 침묵의 시이며 시는 언어적 재능으로 그려내는 그림이다.

Painting is silent poetry, and poetry is painting with the gift of speech.     

시모니데스 (BC556~BC468)    


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1. 그림은 침묵의 시이며 시는 언어적 재능으로 그려내는 그림이다.     

시모니데스는 초기 그리스의 시인이다. 그리스 시절에는 시인이 아주 멋진 직업이었다. 그는 살아생전 여러 궁전을 떠돌아다니면서 솜씨 좋은 송가나 축가를 지었다. 그러다 왕의 공적을 노래로 지을 때면 짭짤한 수익도 얻을 수 있었다. 당시의 시인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모니데스가 스코파스의 궁전에 머물 때, 왕이 자기의 위업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술자리에서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시모니데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의 위업에 빗대어 멋들어진 시를 낭송하였다. 그러나 아첨꾼들 때문인지 왕은 이 시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약속한 보수의 반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그대 시에 나오는 내 이름값이오.
나머지 반절은 쌍둥이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에게 가서 받으시오.’   
  

그렇게 만인에게 창피를 당한 시모니데스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로 돌아왔는데, 누군가가 와서는 ‘밖에서 어떤 두 젊은이가 자네를 찾고 있네’라는 말에 궁전을 나와 그들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며 다시 궁전으로 되돌아가려는 순간 궁전이 무너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 곧, 시모니데스는 자신을 부른 사람이 쌍둥이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참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이 명언은 이후의 이야기에서 좀 더 연관된다.     

 

어찌 되었건 갑작스러운 대형 사고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연회에 참석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이때 유일한 생존자인 시모니데스가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 냈다. 이것이 바로 공간을 활용하는 기억법인 기억의 궁전(로먼룸)의 시초가 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언어의 산물인 시와 이미지의 산물인 그림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시모니데스가 살았던 기원전 6세기경에는 종이가 매우 귀해 다양한 정보를 글로 습득하기 어려웠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므로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을 잘 기억하는 것이 멋진 시 낭송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강력한 기억력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기억법은 머릿속에 공간을 만들어 언어와 이미지를 연합하여 상상하는 방법인데, 이는 언어적 능력을 담당하는 좌뇌와 공간 및 이미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뇌를 더욱 많이 사용하며, 현대에 와서 그 효과가 강력하게 입증되고 있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고 이해한다면 시모니데스가 했던 이 명언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낭송했던 시 한 구절에는 수많은 프레임의 이미지가 농축되어 있음을, 반대로 한 폭의 그림이 수많은 시 구절을 함축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가 사용했던 기억법을 통해 이 명언을 이해했다면
앞으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시를 접할 때 그 속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는지,
반대로 그림을 보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시처럼 떠오르는지
 꼭 한 번 시도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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