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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쩝쩝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고 화가 난다면?

by 심리학자 이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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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가족이 쩝쩝거리며 밥을 먹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다면?
옆 사람이 코로 숨을 쉬는 소리만으로도 짜증이 난 적이 있다면?


단순한 기분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반응은 실제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학적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이 증상을 "미소포니아(Misophonia)"라고 하는데, 특정 소리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입니다.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은 특정 소리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강한 짜증, 분노, 심지어 불안감과 공포를 경험합니다.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뇌에서 감각 정보와 감정을 조절하는 과정 자체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냥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미소포니아는 뇌의 특정 영역이 과활성화되는 신경학적 반응이며, 개인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소포니아는 정확히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 증상을 이해해야 할까요?






미소포니아? –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다


미소포니아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미소(miso)"는 '증오'를, "포니아(phonia)"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즉, 특정 소리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느끼는 증상을 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소리에 신경이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은 단순한 거슬림을 넘어 극도의 분노, 불안,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까지 보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유발 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씹는 소리 (쩝쩝거림)
숨 쉬는 소리
볼펜 딸깍거리는 소리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거나 몸이 긴장되며, 심한 경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뇌의 과정이라 통제하기 어렵죠.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미소포니아는 단순한 예민함이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뇌에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미소포니아 환자들이 특정 소리를 들을 때 뇌의 전방섬피질(anterior insular cortex, AIC)이 과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방섬피질은 감정과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은 특정 소리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도록 뇌가 반응하는 것이죠. 또 다른 연구에서는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의 뇌에서 감각 정보와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망이 비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쉽게 말해,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은 특정 소리에 대해 "이건 단순한 소리일 뿐이야"라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뇌가 이미 과하게 반응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소포니아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


미소포니아는 단순한 불편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경우 사회적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씹는 소리, 국물 마시는 소리에 극도의 짜증을 느껴 다툼이 생길 수 있고, 카페나 식당처럼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특정 소리가 거슬려 외출을 꺼리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특히 직장에서 동료의 타이핑 소리, 볼펜 딸깍거리는 소리에 예민해지면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자책을 하며 위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게 되겠죠.






미소포니아를 줄이는 방법은?


미소포니아를 완전히 없애는 치료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몇 가지 실질적인 방법으로 일상 속 불편함을 줄일 수 있습니다. 먼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거나, 백색 소음(white noise) 기계를 활용하면 미소포니아를 유발하는 특정 소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미소포니아 치료 방법 중 하나로, 불편한 소리에 점진적으로 노출하며 적응하는 훈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짧은 시간 동안 쩝쩝거리는 소리를 듣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점차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심리치료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는 인지행동치료(CBT)를 해볼 수 있습니다. 제 3세대 방식인 수용전념치료(ACT)를 통해 청각적 과민성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특정 소리에 대해 짜증내고 있는 내 반응을 억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고 함께 동반하고자 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도 아주 중요합니다. 미소포니아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듣게 되니 십중팔구 자책하게 되거든요. 이에 주변에서 단순한 예민함과 같은 기분 문제가 아니라 신경학적 반응이라는 점을 함께 이해해주는게 중요합니다.






결론 – 예민한 것이 아니라, 뇌의 반응이다


누군가가 특정 소리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닙니다. 미소포니아는 실제 뇌의 감정 및 감각 처리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하는 신경학적 상태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미소포니아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기 전에 그들의 반응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신경학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는 이런 내용을 알려줘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혹시 나는 어떤 소리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나요?



참고문헌

Schröder, A., Vulink, N., & Denys, D. (2013). Misophonia: Diagnostic criteria for a new psychiatric disorder. PLoS One, 8(1).

Kumar, S., Dheerendra, P., Erfanian, M., Sedley, W., Gander, P. E., & Griffiths, T. D. (2017). The brain basis for misophonia. Current Biology, 27(4), 527-533.

Edelstein, M., Brang, D., Rouw, R., & Ramachandran, V. S. (2013). Misophonia: physiological investigations and case descriptions.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7,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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