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가 나 불렀어?"
길을 걷거나 책을 읽고 있을 때, 혹은 사람들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있지 않나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나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환청이 들리는 걸까요? 아니면 뇌가 장난을 치는 걸까요?
다행히도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이 비교적 흔한 경험이며, 건강한 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오히려 뇌의 뛰어난 정보 처리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없는 소리를 듣는 걸까요? 그리고 이 현상은 뇌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우리의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강력한 청각적 트리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수많은 소리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파티장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멀리서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죠. 이를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 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주변의 수많은 소리 중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가장 강력한 신호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착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도 뇌가 소리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죠. 이는 뇌가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활용하여 의미 있는 정보를 자동으로 찾으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선택적 주의는 우리가 주변 환경에서 중요한 정보를 필터링하고 집중하도록 돕는 인지 기능입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분석하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빠르게 인식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감각 정보가 사실 뇌에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실제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도 있습니다.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한쪽 귀로 특정 단어를 들려주고, 다른 쪽 귀로는 무작위 소음을 들려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집중한 쪽의 단어를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지만, 반대쪽 귀에서 들려오는 단어는 거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여러명이서 대화를 나눌 때 옆에 있는 친구들의 대화는 잘 이해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런거죠.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건, 자신의 이름이 반대쪽 귀에서 들려올 경우 참가자들이 이를 즉시 감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명이서 같이 식사나 술자리 중에도 갑자기 멀리 있는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도 번뜩 그 친구를 보게 되는 겁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평소에도 이름과 같은 중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뇌는 필요할 때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항상 주변을 스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간혹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Bentall(1990) 의 연구에 따르면, 청각적 환각(auditory hallucination)은 일반적으로 정신 질환과 연관되어 있지만, 경미한 수준의 착각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흔히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뇌가 의미 있는 정보를 예측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착오일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또 더 최근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더 자주 이런 현상을 경험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외부 자극이 줄어들 때, 뇌가 내적 사고 과정(internal thought process)을 강화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없는 소리를 듣는 것은 뇌가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며,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내면의 고민이 많을 때에는 건강한 신호라기보단 확인이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는게 더 맞겠죠.
우리 뇌는 1.4kg으로 콜라 페트병 정도 무게가 나갑니다. 그리고 그 작은 친구는 우리의 에너지의 23%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뇌가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꽤 고맙기까지 한 현상이네요. 특히 우리의 이름은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나로써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위안의 관점도 느낄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또 누군가 부른 것 같은데 아무도 없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뇌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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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tall, R. P. (1990). The illusion of reality: A review and integration of psychological research on hallucinations. Psychological Bulletin, 107(1), 82-95.
Cherry, E. C. (1953). Some experiments on the recognition of speech, with one and with two ears.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25(5), 975-979.
Alderson-Day, B., & Fernyhough, C. (2015). Inner Speech: Development, Cognitive Functions, Phenomenology, and Neurobiology. Psychological bulletin, 141(5), 93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