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splay Oct 04. 2018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봄의 도시 '춘천(春川)'에 찾아온 가을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 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 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란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春川(춘천)이니까

유안진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中



 유안진 시인이 그랬다. 봄은 산 너머 남촌이 아니라 춘천에서 온다고. '춘천'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은 곳. 진달래를 닮은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느닷없이 불쑥불쑥 가고 싶은 곳. 가본 적이 없어 엄두도 안 나고 두렵고 겁나지만 기어이 가보고 싶은 곳. 여름에도 봄이고, 가을에도 봄인 곳이라고.


 시인은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봄의 느낌을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춘천의 사계절을 모두 봄으로 느끼는 시인의 상상력에 놀랐고, 섬세한 표현에 감탄했다. 그의 말대로 춘천의 여름에는 산마루의 소낙비가 이슬비로 몸 바꾸고, 춘천의 가을엔 쌓이는 낙엽 밑에 봄나물 꽃다지 노란 웃음이 쌓인다. 이렇듯 시인은 여름이든 가을이든 언제든 춘천은 봄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춘천에 살면서 이 시를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됐다.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건, 소양강변에 위치한 카페 때문이었다. 춘천 시내에서 소양강댐 가는 길목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작은 카페가 있는데 그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말장난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춘천 시내 곳곳에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이 말이 유안진 시인의 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의 의미를 되뇌면서, 이 시를 좋아하게 됐다.


 가을 하늘이 맑은 날, 인테리어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아이스커피보다 따뜻한 커피를 먹고 싶어 질 때쯤 이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 내부가 넓지는 않지만, 바깥 테라스에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기분에 맞춰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엔 왜 방학이 없냐는 한 인디 가수의 투정 어린 노랫말을 흥얼거려 본다.


카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TRAVEL TIP] 카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소양강댐 샘밭 거리 닭갈비집들이 몰려 있는 길가의 아담한 카페다. 정겨운 주변 건물들의 외관과 다르게 모던하게 꾸며져 있어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 진다. 유안진 시인의 시 제목을 인용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낭만적인 이름도 이 카페를 선택하는데 한몫한다. 인테리어가 예뻐서 곳곳에서 사진 찍기도 좋은데, 꽃다발 등 소품들을 빌려 주기도 한다. 춘천 여행을 제대로 티 낼 수 있는 인증샷을 남기고 싶다면 이 곳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커피는 4천 원부터. 아이스크림이나 주스 등 디저트 메뉴도 있다. 주변 닭갈비 집에서 식사를 할 경우 커피를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머그 컵이나 벽면 등 카페 곳곳에서는 명조체로 쓰인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문구를 보고 있노라면, 선선한 가을바람마저 따스한 봄바람처럼 느껴진다카페 이름에 끌려 이 곳을 찾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춘천과 관련된 시집이나, 문학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코너가 한편에 마련돼 있으면 더 좋겠다 싶다. 그럼 이곳의 낭만은 두 배가 될 터이다.




 언제나 봄의 도시 일 것 같은 춘천(春川)이지만, 이곳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춘천은 다른 지역보다 가을이 빨리 온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내륙 분지 지형이라, 여름이 끝나기 무섭게 가을이 찾아온다. 그만큼 겨울도 빨리 찾아 오지만, 호수와 산으로 둘러 쌓인 춘천의 가을은 분명 매력이 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숲과 영롱하게 빛나는 가을 호수, 그리고 곳곳에 피는 야생화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춘천의 가을 (2018.9.26.)


 이대로 가을을 보내기 싫어 '가을이 더 길었으면'하고 원해 보지만, 계절은 남의 속도 모르고 빠르게 변해 간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 페이크 삭스를 신기엔 발목이 시리다. 어제는 장롱에 푹푹 묵혀둔 겨울 솜이불을 꺼내 덮었다.


 요즘은 퇴근만 하면 춘천 곳곳을 둘러보느라 바쁘다. 깊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등산을 하기도, 공지천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골목을 돌아보거나 책을 들고 카페를 찾아가기도 한다. 잠들기 전이면, 내일은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왠지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수의 해 뜰 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