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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희 Jan 05. 2022

1. 엄마의 허벅지

내가 엄마의 튼실한 힘이 되어 줄께.

유치원 방학으로 5살 조카를 누군가는 동생이 퇴근해서 육아 바톤터치 할 때까지 돌봐야 하는 날이다. 그 임무는 먼저 엄마에게 주어졌다. 엄마는 딸 셋을 키우고 치매 할머니를 모시고 아빠를 데리고 사는 60대 여인이다. 그리고 딸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자 엄마의 역할은 하나 더 늘었다. 아기 돌보미.

유치원은 8시 30분~ 4시까지 조카가 머물 수 있다. 만 3~4살 아기들에게 어른만큼 힘든 스케쥴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스케쥴도 그것에 맞춰야 한다. 4시부터 조카를 돌보다가 동생이 퇴근해 집에 도착하는 6시 10여분까지 엄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조카가 방학이 되었으니 온 종일 아기 돌보미 역할을 해야 한다. 엄마가 분명 힘들고 버거우면서도 동생을 위해, 조카를 위해 그 부탁을 거절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조카가 감기에 걸려 있다니 더 걱정이 되었다. 힘들 엄마 걱정, 심심해 할 조카 걱정.

자신의 업무가 끝나면 조퇴가 비교적 가능한 직장 덕에 난 조퇴를 쓰고 엄마를 대신에 점심시간이 끝나자 마자 동생네로 갔다.

엄마와 놀다 잠이 들었다는 조카를 보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파서 그런가 걱정도 되었다. 엄마는 때 맞춰 조카에게 먹이라고 동생이 준비해 놓은 감기약을 본인이 잘못 먹여 애가 잠이 든 건 아닌 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 새끼면 내가 책임지는데 자식의 아기이니 더 눈치가 더 보이는 듯 했다.


‘괜찮을 거야. 제대로 잘 먹였네.’ 하며 엄마를 안심시키고 엄마의 얘기들을 들었다. 매번 결국은 같은 레파토리의 얘기지만 엄마는 늘 열정을 다 해 이야기 했고 난 열심히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손, 엄마의 다리, 엄마의 눈, 옷차림, 표정을 살핀다. 손은 더 작아지고 예쁘다. 주름이 많아졌을 뿐이다. 눈은 피곤해 보이지만 여전히 예쁘다. 옷차림은 추운 집을 견디기 위해 겹겹이 입은 보온을 위한 옷. 바빴던 오전과 정신없는 마음이 느껴지는 차림이다. 언제나처럼. 표정. 엄마의 표정. 엄마의 표정은... 늘 눈 앞에 자식의 상태를 살피는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일이 있는데 괜찮다고 하는지? 아프진 않은지? 엄마가 판단 결과 내가 잘 지낸다고 느낄 때면 그때서야 엄마의 표정은 표정을 찾는다. 엄마에겐 엄마의 감정 전에 자식들이 안위가 있다. 그리고 자꾸 마음에 걸리는 엄마의 다리. 얇은 허벅지. 줄곧 엄마는 통통하고 하얀 예쁜 외모를 가진 엄마였다. 그런데 자꾸 허벅지가 얇아진다. 튼실한 허벅지로 엄마는 한밤 중 경기를 하는 동생을 업고 뛰었고 대학원서를 내는 나를 위해 뛰었다. 타박 투성이 남편을 안쓰럽게 여기며 남편의 힘든 부분을 어디든지 달려가서 채워주었다. 탈 많은 시동생, 시누이를 다 챙겼고 딸 셋을 감정적 부족함 없이 키우려 정신없이 살아갈 때도 엄마의 다리는 튼튼했다.

집에 누가 아프면 아프다고 하기 전에 약이 사들려 왔고 속이 상하고 마음 아픈 일이 있을라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재료를 얼른 사와 이미 방 안에는 그 음식으로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엄마는 그런 엄마였다. 그런데 가족을 위해 엄마의 사방을 누비던 다리가 얇아졌다. 나이듦일 수도. 가족의 무관심일 수도. 엄마의 외로움일 수도 있다.


내가 조카를 돌보미 바통을 받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엄마가 아파트 바로 앞에서 탈 수 있도록 택시를 불렀다. 요즘에 쉽게 휴대폰 어플을 통해 부르면 정보를 다 알 수 있고 요금이 바로 지불가능해서 엄마가 돈 꺼낼 필요도 없으니 좋은 선택이다. 택시를 부르고 엄마는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택시 기사가 그 근처를 헤매이는 게 보이고 전화가 울린다. “손님, 어디세요?”

“거기 자주색 옷을 입은 저희 엄마가 계실텐데요.”

“없어요. 아줌마는 없는데... 아! 저 어르신이신가보네요!... 맞으시네요. 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상했다. ‘어르신’이라니... 우리 엄마가 이제 ‘아주머니’를 넘어 ‘어르신’이 되어있었다.

엄마의 얇은 허벅지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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