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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희 Jan 05. 2022

고개를 돌리면 문은 어디에나 있다.

프롤로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둘기가 있었어요. 사람도 겁내지 않고 뒤뚱뒤뚱 걸어 다닙니다. 퉁퉁하게 살이 찐 비둘기들을 보고 반기는 건 아이들뿐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비둘기를 피하지요. 누가 먹이를 줘 저렇게 살이 쪘냐며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비둘기가 천연기념물이었으면 비둘기를 만난 것 자체가 기쁨이고 귀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흔하고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잊게 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지요. 우연히 눈앞을 지나는 비둘기를 자세히 본 적이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 자세히 보니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였지요. 그 발로 뒤뚱대며 걷고 있는 비둘기의 걸음을 따라 눈길을 옮기니 다른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아이는 부리가 휘어서 부리를 다물 수 없네요. 그러고 나니 그때부터는 비둘기들의 상처들이 보입니다. 비둘기들의 상처가 우리의 탓인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하얗게 빛나는 자태의 비둘기는 서로 섞여 요상한 색의 깃털을 갖게 되었고 삶에서 얻은 상처들을 안은 채 용감해져 사람 따위를 겁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같은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걸음마를 떼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피하고 또 만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또 한 마리의 비둘기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하늘을 향해 날아도


 푸드덕 쿵. 푸드덕푸드덕 쿵. 푸드덕… 복도를 타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빈 강의실을 한 칸, 한 칸 지나가면서 소리는 가까워졌다. 이 강의실이구나. 비둘기 한 마리가 텅 빈 강의실을 푸드덕 대며 날고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들어온 거니? 생각하면서도 문밖으로 나와 내게 달려들까 봐 겁이 나 단단히 닫힌 문을 확인했다. 비둘기가 들어와 있는 강의실 안을 살펴봤다. 오늘도 어제처럼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낮은 번쩍대는 번개와 요란한 천둥으로 내내 저녁같이 어두웠다. 오늘은 좀 날씨가 좋아질까 싶었는데 오늘도 역시 요란한 비가 한바탕 쏟아지다 멈추기를 반복하다 지금은 이슬비 정도의 비가 날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강의가 끝나 모두 하교하는 시간에 비가 잦아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조용해진 복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 한 강의실에서 비둘기를 발견한 것이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이제는 길에서 제일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되었다. 그런 흔한 비둘기를 예쁘다고 만져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처음 만나는 아기들뿐이었다. 한 마디로 난 비둘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 비둘기가 내 강의실에 있는 것이다.

 복도 창문에서 바라본 강의실 안은 고요했다. 잘 정돈된 책상과 의자들, 멀티기구들이 가지런하고 차분하게 각자의 자리에 놓여있었다.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비둘기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푸드덕 푸드덕. 평화롭고 안정된 날갯짓은 아니었다. 내가 강의실 안에 있는 비둘기를 보는 것이 낯설고 싫은 것처럼 비둘기도 내 강의실에 있는 것이 좋은 것 같진 않았다. 날갯짓의 방향도 속도도 제 멋대로인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강의실의 바깥쪽으로 나 있는 창문은 강의실 한 쪽의 끝에서 끝까지 연결되어 있다. 창문 두 짝이 한 세트로 창문을 열려면 한쪽이 다른 쪽 창문 뒤로 밀려 들어가야 했다. 비가 잠시 그쳤을 때 환기를 위해 열어뒀을까? 바깥쪽으로 나 있는 창문들은 한 세트당 한쪽씩 다 열려있었고 높이는 내 키보다도 크다. 창문 앞으로 강의실 안쪽에 긴 쇠 난간이 길게 가로질러 있다. 비둘기는 퍼붓는 비가 잦아든 사이 하늘을 날다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자 비를 피하고 잠시 앉아 쉴 요량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나 안락한 쉼터가 된 강의실을 나가려니 투명한 유리창에 막혀 나가지 못하고 있던 것 같았다. 분명 눈 앞에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날아올랐지만 쿵. 머리를 유리창에 부딪히고 어안이 벙벙하다. 다시 푸드덕! 다시 쿵! 몇 번이고 날아오르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다음 날갯짓은 정돈되지 않고 불규칙해지고 더욱 강력해졌다가 이내 날갯짓이 느려지고 힘이 빠졌다. 이 난감한 상황이 당황스러웠을까? 강의실 난간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한참을 주위를 살피며 갸우뚱대다가 다시 한번 날갯짓을 하다가 쿵! 난간에 다시 앉고는 커다란 유리창 넘어 하늘을 바라본다. 강의실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들의 왜 거기 있냐고 묻는 듯한 소리도 듣는다. 바로 옆 열린 창문으로 비켜 들이쳐 들어오는 비를 온몸을 맞고 있다. 밖에서 불어오는 제법 강한 바람도 느끼면서. 얼마나 이상할까. 자유롭게 날던 하늘이 있는 곳에 동료들의 소리, 몸에 들이치는 비, 바람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눈앞엔 날아오를 하늘이 있는데 왜 나갈 수가 없는지. 비둘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비둘기는 밖이 보이는 난간에서 창밖을 한참을 바라보기만 한다. 푸드덕 대지도 않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도 않는다. 유리창에 부딪힌 몸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몸이 고통스러운 만큼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 자체가 두려울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도 날아오를 수 없는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2. 낯선 하늘을 걷다.    

 

 비가 내린 날 낯선 공간에 들어와 허둥대던 비둘기와 같던 상황이 있다. 나에게도 매일 비가 내리던 날들이 있었다. 그 비는 가랑비이기도 또 다른 날은 폭우이기도 했다. 긴 인생으로 보면 짧은 순간 소나기일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습기 가득해 불쾌한 지루한 장마였던 그때가 있었다. 우산은 없었다. 세상의 모든 해결 방법이 나에게 있는 듯 강해야 했고 웃어야 했고 책임감이라는 것이 내 어깨를 아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소녀 가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집의 경제적 구멍을 막아내야 했으며 나는 모두 다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누구도 시킨 사람은 없었다. 가족 누구도 나에게 그 무게를 짊어지게 한 사람은 없었다. 맏이여서도 아니었다. 그냥 난 가족이 힘들고 상처받는 게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게 나의 기쁨이기도 행복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비가 끝도 없이 내리니 난 폭삭 젖어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게 지쳐있었다. 긴 장마도 늘 끝이 있듯이 나에게 오는 비도 그쳐가고 있었다. 그건 내가 짐을 벗어 던지는 것이었다. 적당히 비를 피하고 젖은 옷을 개운하게 잘 말려진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비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난 비행기표를 끊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도착한 곳은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착한 낯선 도시는 나에게 어느 정도 해방감과 편안함을 선물해 주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걸어 다녔다. 무작정 떠난 덕에 여비도 넉넉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했더라도 여행 비용은 편도 비행기 삯 뿐인 건 다르지 않았다. 차비를 아끼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 행복한 도시를 그냥 걷는 게 좋았다. 도시를 온종일 걷고 싶을 만큼 하늘은 예뻤고 나무는 싱싱하게 푸르고 처음 보는 꽃은 보라색을 머금은 채 천지에 피어 평화로움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적당히 낯설고 적당한 편안함이 좋았다. 나에겐 어떠한 책임도 버거움도 무게가 깃털같이 가벼웠다. 사람들은 어디든 담요를 펴서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평일에도 가족들은 어디서든 여유로워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모여 있는 평일의 시내 중심지의 점심시간조차도 주말의 평온한 분위기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샌드위치나 스시를 들고 아무렇게나 계단에 앉아 점심으로 먹으며 음악을 듣고 노천 식당에서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점심을 먹고 있었다. 느껴보지 못한 일상의 느린 템보가 즐거웠고 편안했다. 나도 고풍스러운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아침에 대강 만들어 나온 샌드위치를 꺼내 들었다. 이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는 고풍스러운 외관과 내부의 책상들 때문이었다. 해리포터가 다니던 호그와트의 식당과 비슷한 책상이 마음에 들어 책도 읽지 않으면서 몇 시간 앉아 있다가 배가 고파 도서관 공원 벤치로 나온 터였다. 하루, 이틀, 한 주가 지나가며 내 일상에 신선함이 익숙함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첫날 도서관 앞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것과 같이 일주일이 지난날에도 도서관 앞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룰루랄라 하늘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어 도서관에 도착해 오전 내내 호그와트 책상에 앉아 책을 만져보다가 벤치에 나와 점심을 먹던 차였다. 내가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의 무게가 예고 없이 내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불쑥 스친 불안감이었다. 책임감이며 무엇이며 다 벗어 던지고 편도 비행기표 한 장에 매달려 온 나의 탈출에 갑작스레 불안감이 스친 것이다. 왜지? 도착한 후 이곳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제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와서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쉬고 노는 것도 난 못 하는 걸까? 정말 딱 일주일이 지나니 무언가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불안해졌다.      


3. 나가고싶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어는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아 영어만으로 살아야 하는 여기에서 생활비를 벌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돈을 벌어야 하는 책임감까지 다 내려놓고 떠나 온 이곳에서 결국 다시 나의 생계를 위한 삶의 수단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나만을 위한 벌이 정도이니 가벼웠다.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내 시선은 상가와 안내판의 구인 광고판을 향해 걷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찾으면 답이 보인다더니 우연히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청소 전문 업체에서 스마트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큰맘을 먹고 연락을 했다. 빠릿빠릿한 한국인은 당연코 스마트한 구직인 임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은  40층이 넘는 건물의 두세 개의 층마다 설치된 사무실 휴게 공간의 커피 머신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구인 공고에 스마트한 사람이 필요하다 했었지만… 스마트한 직원이 해야 할 일은 사무용 작은 커피머신 6개를 3시간 동안 청소하면 되는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손 빠른 우리나라 사람이면 3시간에 60개도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커피머신이 있는 공간들은 나름 좋은 회사 직원들의 휴게 공간이기에 쾌적하고 아주 고급스러웠다. 나름 행복한 일이었다. 통창으로 도시가 훤히 보이는, 말 그대로 뷰 맛집이었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빚을 갚던 나에게 이 일은 일이 아닌 휴식이었다. 2주에 한 번 받는 2주급은 내가 생활하고 공부하기에 넉넉하진 않았어도 약간의 부족함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이었다. 보통은 계약한 주 5일, 매일 3시간 이외의 시간이나 주말은 일이 없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더 하려 해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득달같이 전화벨이 울렸다. 근무시간이 끝났으니 그만 마치고 퇴근하라고 했다. 참 이상한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선 퇴근 시간보다 더 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당연한데. 그래서 당연히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칼퇴근’이라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전날은 퇴근하려는 나를 그리스인 오너가 따로 불러 특별한 부탁이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요점은 주말에 우편함이 모여있는 공간의 청소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난 흔쾌히 ‘OK!’라고 대답했다. 1시간 잠깐 청소하고 하루 페이를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약속한 주말 아침이 되어 청소 카트를 챙기기 위해 건물 지하의 사무실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함께 수다 떨던 태국인 키키, 터키인 휘데, 한국인 인성이가 없는 사무실이 적막했다. 혼자가 어색하긴 했지만 한 시간은 너무나도 가벼운 시간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청소 카트를 밀고 우편함 오피스를 찾아갔다. 우편함 오피스는 한 평 반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이렇게 작은 곳을 청소하는 데 1시간, 그리고 하루 일당이라니. 횡재였다. 우편함 오피스는 오피스라고 하기보다 작은 창고 공간이라고 하는 게 적당했다. 각 세대의 우편들이 전달되는 우편함들이 한쪽 벽면에 있고 나머지 세 면의 벽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스인 오너는 걸레질보다는 먼지떨이를 이용한 청소를 권장하기에 그저 먼지떨이로 몇 번 우편함을 털고 훑어주면 되는 게 전부였다. 5분도 안 걸릴 것 같았다. 청소 카트가 들어가기에도 작은 공간이라 복도에 카트를 놓고 먼지떨이만 들고 우편함 오피스에 들어갔다. 잠깐이니 휴대폰도 일할 때 전달받는 무선기도 모두 카트에 두었다. 두꺼운 문이 무겁게 ‘쿵’ 닫혔다. 나름 유명한 회사들의 우편물이 있는 곳이라 문이 이렇게 두껍게 만들었을까? 잠깐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금방 끝났고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두껍고 무거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러 번 문고리를 돌려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어릴 적 보던 외화 ‘맥가이버’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도 맥가이버는 사건이 안 풀릴 때 ‘우리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하면서 주변 사물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학으로 상황을 풀어가던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와 음악이 떠올랐다. 나도 맥가이버가 될 수 있겠구먼. 왠지 재미있었다. 어떻게 하면 문을 열 수 있을까?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창문도 없었다. 문을 열기 위해 이용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사실 우편함과 편지들 몇 개뿐, 아무것도 없었다. 벽뿐이었다. 금방 끝날 청소라고 생각해서 복도에 두고 온 청소 카트가 생각났다. 그리고 거기에 올려놓은 온 휴대폰이 생각났다. 무선기는 오늘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뿐이니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 갑자기 진땀이 났다. 아… 오늘은 토요일. 일요일부터 이어진 긴 연휴였다. 그리스인 오너도 연휴를 위해 나에게 주말 일을 맡긴 것이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텐데. 다시 문고리를 세게 돌려댔다. 열리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맥가이버의 대사도 이제 들리지 않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4. 문이 잠겼다.     


 강의실의 비둘기가 머리를 다시 갸우뚱댄다. 난 복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비둘기를 안타깝게 보고 있다. 도와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비둘기가 싫어도 도와주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밖으로 날려 주기 위해 내 손으로 비둘기를 꽉 움켜잡고 물컹한  새의 몸을 느끼며 열린 창문까지 들고 가서 날려 줄 자신이 차마 없었다. 막대기를 이용해 비둘기를 열린 창 쪽으로 몰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난 그냥 가만히 비둘기가 스스로 고개를 돌려, 바로 머리 뒤에 열린 창문을 발견하고 날아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모르는 분이었지만 반가웠다. 다짜고짜 손을 흔들며 여기에 비둘기가 갇혀있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남자도 그리 흔쾌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기대하는 내 눈빛에 어쩔 수 없이 강의실로 들어갔다. 손으로 몇 번 휘~휘~ 젓더니 비둘기가 꼼짝도 안 하자 더 가까이 다가가 비둘기를 열린 창문 쪽으로 ‘툭’ 쳤다. 비둘기는 휘청대면서 자리가 조금 옆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비와 바람이 더 가까워졌음이 느껴졌는지 앉은 자리에서 살짝 날개를 푸듯 대더니 푸드덕 날아올랐다. 금세 안정적으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창 앞에서 크게 두세 바퀴를 원을 그리며 돌더니 멀리 날아올랐다. 나는 그 남자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며 이 강의실에서 비둘기가 한 시간이 넘게 못 나가고 다친 것 같아 걱정했는데 잘 날아가니 괜찮은 것 같다고 떠들어댔다. 남자는 네. 이런 일이 자주 있네요. 하며 별일 아니라며 미소를 지어주곤 복도를 따라갔다.

 내가 멜버른의 작은 우편함 창고에 갇혔던 날, 나에게도 갇힌 비둘기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나 같은 사람이나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조언을 ‘툭’ 던져주는 손짓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에겐 아무도 없었다. 완벽하게 나 혼자였다. 연휴가 이어지는 주말의 도시는 생각 이상으로 한적했다. 우리처럼 1박 2일, 2박 3일 정도의 휴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짧게는 일주일. 보통은 15일에서 한 달 정도의 휴가를 갖는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제는 맥가이버의 음악과 대사 대신 15일 후나 한달 뒤에 휴가를 마친 사람들이 우편 온 것들을 정리 한번 할까 할 때쯤에서나 내가 갇혀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물도 없으니 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3일? 일주일? 창이 없는 사방이 벽이라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모르고 날짜도 계산할 수 없겠지? 문을 꽝꽝 두드려도 소용이 없을 거야. 들어올 때 ‘쿵’하고 닫힌 안전을 위해 두껍고 무겁게 제작한 특수 문은 밖으로 소리도 울림도 전해주지 못 할 거야. 어쩌지. 두려웠다. 철컥철컥. 문고리를 돌려봤다. 이쪽저쪽으로 문고리를 세게도 약하게도 돌려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내 안에 남아있는 모든 긍정의 힘을 모아 맥가이버 음악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리고 일어나 문을 다시 돌려보고 쾅 쾅 쾅 두드려댔다. 울림은 이 공간으로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점점 더 불안은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언제 발견될지도 모르게 죽어가는구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순식간에 영화처럼 나의 지난 삶의 장면들과 기분들이 스쳐 가고 죽어갈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내 삶이 지나가고 죽음까지 엿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두려움이 잠시 잊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고리를 잡고 일어났다. 다시 한번 문을 열어 봤다. 열리지 않는다. 그래. 열리지 않네. 체념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할 엄마만 염려되었다. 문고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던 두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문에 기대고 쭉 미끄러지듯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눈물이 흐르는 눈의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5. 고개를 돌려     


 한쪽 문이 닫히며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말이 있다. 그저 용기를 주는 비유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진짜로 문이 현실에 나타났다. 그것도 내 눈앞에! 또 다른 문고리였다. 확실한 문고리다. 천장에서 벽을 타고 시선이 내려앉으면서 발견한 것은 모양이 다르지만, 문고리가 틀림없었다. 그럼 저건 문이다. 조심스레 일어나 문고리를 돌려본다. ‘철컥’ 문이 열리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청소 카트가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 휴대전화도 그대로다. 휴대전화엔 부재중 통화도, 부재중 메시지도 없이 그대로였다. 10분. 내가 청소하러 들어간 지 10분이 지나있었다. 겨우 10분이었다. 문이 다시 닫힐까 봐 겁이 나 청소 카트로 문을 연 상태로 고정하고 다시 우편함 오피스로 들어섰다. 다시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들어간 후, 문이 청소 카트로 잘 고정되어 열려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간을 다시 살펴봤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알고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 문 앞에 있던 순간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먼지떨이만 들고 가볍게 문을 열고 우편함 오피스에 들어갔다. 무겁게 ‘쿵’ 닫히는 문소리에 놀라 닫힌 문을 한번 뒤돌아보았다. 문이 닫힌 걸 보고 다시 돌아서 왼편에 있는 우편함의 먼지를 청소했다. 청소가 끝나고 다시 몸을 왼쪽으로 돌려 문을 열고 나오면 이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난 들어가 왼편 벽의 우편함을 청소하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던 거다. ‘왼좌 오른우’를 되뇌어야 좌측, 우측을 아는 방향치가 사달을 낸 거다. 그런데 우연히도 오른쪽에도 문이 있었던 거다. 열리지 않도록 닫힌 문. 그 문의 문고리를 붙들고 난 내 생애를 영화로 보고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나의 생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맥가이버의 특별한 방법도 과학적인 방법도 필요 없었다. 그냥 문이 열리지 않으면 시선을 돌려 다른 문을 찾아보면 됐다. 바로 고개를 돌리면 되는 것이었다. 무겁게 ‘쿵’ 닫힌 문소리에 놀라지 않고, 혼자라는 것도,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비가 많이도 내리는 날들이 시간이 있다. 소나기일 수도 있고 지리한 장마일 수도 있다. 나처럼 맑은 하늘에 갑자기 퍼붓듯 내리는 스콜일 수도 있다. 놀라지 말길 바란다. 비둘기처럼 난간에 잠시 앉아 기다려보는 것도 괜찮고 나처럼 울어버리며 나의 인생의 영화를 한 번쯤 봐도 좋다. 하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고개를 돌리면 문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두려워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느껴지는 순간에도 시선을 돌리면 바로 옆에 문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이미 열린 문이 그쪽을 보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아보라.


에필로그 :

멜버른에서 점심을 먹던 도서관 앞 벤치, 그 앞은 잔디가 깔려있고 비둘기들이 늘 많았다. 그 비둘기들에게 사람들은 남은 간식을 주기도 하고 곁을 내어주기도 했다. 따뜻했다. 사람들도 비둘기를 싫어하지 않았고 비둘기들도 다친 상처가 없었다. 서로 같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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