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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 Nov 28. 2021

아이들의 눈으로 본 찬란한 세계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 디파 아나파라


바하두르는 자기가 어리석다고 혼잣말을 했다. 정령과 괴물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만 살았다. 

하지만 공기는 두려움으로 팔딱이고 있었고, 정전기처럼 손에 만져질 것 같았다. 

바하두르는 자신의 시끄러운 숨소리를 듣고 입술 없는 입을 크게 벌린 정령들이

흰 두 팔을 벌린 채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중략)... 

바하두르는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렸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바하두르가 말할 수 없었던 다른 모든 말처럼, 

비명 소리도 목구멍 안에 딱 들러붙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 본문 71p 중에서





출간 전부터 표지와 책 날개의 설명으로 눈을 사로잡았던 소설이 있다. 일단 배경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인도라는 점이 그랬고,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시각으로 보는 작품이라는 점이 그랬고, 무엇보다 <에밀과 탐정들>처럼 아이들이 탐정이 되어 사건을 수사한다는 점이 그랬다. 평소 추리소설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내게,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겨울 밤,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읽는 행복한 시간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그 동안 우리 나라에도 꽤 많이 소개되었다. 작품 속에서는  10여년 전 인도 영화로는 처음으로 크게 흥행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풍경 그대로가 펼쳐진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늘어선 부자 동네 사이로 빈민가 아이들이 사는 마을이 섬처럼 남아 있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없어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에 길게 늘어선 어른과 아이들, 단칸방에서 이사갈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사는 자이네 집, 부자 동네에서 파출부로, 경비원으로, 다림질사로 일하는 마을의 어른들과 그렇게 해도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삶. 2020년 씌어진 작품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빈민가의 풍경은 그 공기가 코 끝에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하지만 주인공 소년 '자이'의 입을 빌어 경쾌하게 펼쳐진다. 



그 와중에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말더듬이 친구 바하두르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이는 (나처럼) 탐정 영화와 범죄 수사 드라마를 엄청나게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절친 친구인 파리와 파이즈와 함께 바하두르를 찾는 탐정단을 만든다. 바하두르의 동생들과 어른들은 바하두르가 영화에 나오는 댄서가 되고 싶어 뭄바이로 도망간 거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바하두르가 없어지고 얼마 후 이번에는 옴비르도 없어졌다. 마닐라에 가고 싶다고 바하두르가 동생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자이는 용기를 내어 집에 숨겨진 돈을 훔쳐서까지 친구들과 함께 보라선 전철을 탄다.  전철 푯값을 마련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어 엄마가 모아 둔 비상금을 꿀꺽한 자이의 모습은 보는 나까지 엄마에게 혼날까봐 심장 떨리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도시에 간 자이와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어엿한 탐정 활동을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계속 사라진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강렬한 향에 중독된 것처럼 인도 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자이, 파리, 파이즈와 함께 아이들을 찾으러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는 심정이랄까. 작가는 다양한 간식들과 길거리의 풍경, 곳곳에서 풍기는 냄새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다. 인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인도 출장을 다녀왔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해 준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 있다. 아이들이 모험을 해 나가며 그 눈으로 보는 세계는 어른들의 시각보다 훨씬 날것이며 생생하다. 


코 끝에 강하게 맴도는 인도 거리의 향신료, 금방이라도 노점상에서 홀짝거릴 것 같은 진한 차이의 향. 책을 펼쳐 읽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 시대에 나는 인도의 빈민가, 승용차들과 릭샤와 달구지와 동물들로 꽉 찬 대로, 도시의 사람들로 가득 찬 복잡하고 정신없는 지하철, 도시의 높은 고층빌딩 거리와 그 사이를 복잡하게 둘러 싼 지저분한 거리 속을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 가진 게 없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무서운 빈부 격차 속에서도, 아이들의 눈으로 본 찬란한 세계는 희망의 빛을 발한다.


사라지는 아이들은 도대체 누가, 어디로 데려간 걸까? 바이두르와 옴비르는 정말 정령이 잡아간 걸까? 자이와 친구들은 사라진 바하두르를, 옴비르를,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루누 누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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