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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Sep 27. 2023

보고 싶은 경은에게

경은아,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요즘 과거의 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있어. 그 장면들 속에 네가 자꾸만 보여. 궁금하다 네가. 똑 부러지게 말 잘하고 영특했던 너를, 나는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혹시나 네가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성을 붙여 이름을 검색해 보곤 해.      


우리는 00초등학교 2학년 1반이었지. 내 기억 속의 너는 툭하면 학교를 박차고 나가 집으로 가 버리는 아이였어. 그러면 선생님은 너랑 제일 친한 나를 너의 집으로 보내셨어. 2023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수업 중에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다니. 교사가 된 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 그게 가능했던 그 시절, 나는 너를 찾으러 학교를 나갔어. 너의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지.     


“경은아, 학교 가자.”     


그러면 너는 문도 열어 주지 않고 소리쳤어.     


“싫어! 학교 안 갈 거야!”     


너는 화가 많이 나 있었어.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네가 차고 있던 철컹거리는 쇠붙이를 놀렸거든. 어떤 날은 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함께 손을 잡고 다시 학교에 갔고, 어떤 날은 나 혼자 털레털레 학교로 돌아갔지. 혼자 돌아간 날에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너의 책가방을 싸서 하교할 때 가져다 주곤 했어.      


경은이 너는 한쪽 다리가 없었어. 그래서 보행에 도움이 되는 철컹거리는 보장구를 다리에 끼고 다녔지. 너의 한쪽 발에 신겨진 신발은 늘 같은 거였어. 쇠붙이 보장구와 연결된 검은색 커다란 워커.

너는 절뚝, 절뚝, 걸었고 그럴 때마다 철컹, 철컹, 소리가 났어.

천천히 걸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에는 보장구가 닿는 살에 진물이 생기기도 했지. 너는 학교에 있던 많은 시간을 대부분 앉아서 보냈어. 지금은 의학 기술과 공학의 발달로 티 나지 않는 의족이 있지만 3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어. 그때 너의 다리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으로는 너를 놀리던 남자아이들이 미웠지만 단 한 번도 너를 위해 싸워주지 못했어. 나는 누군가에게 저항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겁 많은 아이였거든. 그저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 우리 엄마 옆에서 엄마 이야기를 들어 주듯, 너의 옆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이건 그때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어.     


경은아, 그때 너는 장애인이었더라. 나는 장애인이 뭔지 몰랐을 만큼 어린 나이였어. 그래서 너를 많이 부러워했단다. 무엇을? 네가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것을.

너에게는 아버지가 없었거든.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너의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너를 태우고 달리던 중 사고가 났다는 것. 너는 한쪽 다리를 잃었고,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그 헤어짐이 죽음으로 인한 것인지 이혼인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나는, 아버지가 없는 네가 너무도 부러웠어. 나도 내 신체의 한 부분과 아버지의 부재를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말이란 걸 지금은 알고 있어. 그런 마음 가졌다는 것,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어.      


어느 날, 우리는 헤어졌어. 너희 집이 외갓집 근처로 이사하는 바람에 전학을 가게 되었지. 집 전화와 편지가 유일한 연락 체계였던 시대여서 나는 너에게 우리 집 주소를 적어 줬어. 너는 새로 이사하는 집의 주소를 알게 되면 편지 쓰겠다고 했는데, 편지는 오지 않았어.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너를 기억하려고 좀 더 애썼을 텐데.     


30년이 흐른 지금에도 너는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어. 작은 눈, 얄팍한 입술, 붉은 기가 돌던 통통한 볼. 그리고 너의 엄마 등에 업힌, 해맑게 웃던 너.      


경은아, 나는 특수교사가 되었어. 어쩌면 그때부터, 너랑 친구일 때부터, 나도 모르게 내 운명을 좇고 있었나 봐. 너를 놀리던 아이들에 맞서지는 못했지만, 그 애들과 같은 마음은 아니었어. 너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다리에서 소리가 난다고 우리랑 뭐가 다른 건지, 왜 놀림을 받아야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럼에도 그때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못한 것, 미안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너에게 상처는 아니었을까 뒤늦게 생각하고 있어.


기술 발달의 속도만큼 사회적 인식과 제도도 같은 속도로 변화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전한 사회에서 너는 어떤 상처를 받고 있을까, 괜찮을까.

나는 조금 단단한 사람이 되었어. 지금의 나는 너를 위해 버럭 소리 지르며 싸울 수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경은아, 잘살고 있는 거지?

경은아, 경은아, 마흔을 갓 넘겼을 경은아.

난 가끔, 네가 연락할 수 없는 곳에 있을까 봐 겁이 나기도 해...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정말 보고 싶다.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기를, 내가 너를 찾아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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