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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Jul 02. 2024

기억의 소리

                                                

 우연히 고향에 내려가서 어릴 적 살았던 옛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이 우리 집 자리였음을 알아내기란 어려웠다. 옛집 자리에는 대형할인점이 들어섰고 우리 집 앞 골목은 사거리로 변해있었다. 그 건물은 마치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버티고 서서 복잡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옛집을 기억할만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옛집은 자리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서도 아득해진, 희뿌연 안갯속 끝자락에 매달려 가물거리고 있는 기억의 불빛이었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년의 불빛.

 우리 집은 가구점을 했었다. 마당을 들어서면 안채엔 식구들이 살았고, 행랑채가 가구 일을 하는 곳이었다. 가구점은 주문이 밀려들어 새벽까지 불을 밝혀 일했다. 일방에서는 항상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중에 마당을 나와 보면 라디오 소리와 웃음소리, 망치 소리, 대패 소리들이 들려 활기를 띠었다.

 아버지는 질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가 사들인 나무들이 화물차에 실려 도착하는 날이면 우리 집은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일꾼들이 동원되어 마르지 않은 나무들은 벽에 세우고 마른나무는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아버지는 일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고기 근을 끊어 오셨다.  마당에 숯불을 피워놓고 일꾼들과 식구들은 빙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가구점 일방은 나의 놀이터였다. 나는 어머니의 핀잔을 받으면서도 틈만 나면 일방을 들락거렸다. 누런 아교를 툭툭 끊어서 깡통에 집어넣기도 하고, 아교가 끓어 말갛게 되면 저어보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대패 꽁무니에서 꼬물꼬물 나오는 대팻밥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그것을 곱게 말아 머리에 화관처럼 써보기도 했다. 저녁때가 되면 어머니는 그 대팻밥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그것은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발갛게 타들어 갔다.

 나는 기술자 아저씨들이 자개장 만드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곤 했다. 아저씨들은 맨 먼저 화선지에 학과 소나무를 그린 다음 그 그림본 위에 자개를 오려 아교 칠을 해 붙였다. 자개 그림 뒷면에 아교 칠을 해서 판자에 대고 인두로 지지면 달구어진 인두에서 피시식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저씨들의 팔뚝에는 힘을 줄 때마다 근육과 심줄이 울룩불룩 솟고, 땀이 밴 아저씨들의 얼굴도 찡그렸다 펴졌다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키득거리는 나에게 아저씨들은 눈을 흘기며 같이 웃어주었다.

 힘들여 붙인 자개 종이를 떼고 난 장롱은 일꾼들이 칠방으로 옮겨갔다. 칠방에 들어서면 후끈한 열기와 칠 냄새로 눈이 따갑고 쓰렸다. 칠이 잘 마르게 하려고 칠방 아궁이에는 항상 톱밥 섞인 대팻밥이 타고 있었다. 여러 번 칠을 한 장롱이 마르면 다시 일방으로 옮겨졌다. 일꾼들은 자개 위에 입혀진 칠을 끌로 벗겨내야 했다. 그것은 아주 정교한 작업이었다. 자칫하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가구에 흠집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칠을 벗겨낸 자개농에 물을 뿌리고 사포로 밀어 곱게 다듬는 일이 끝나면 윤을 내기 시작했다. 헝겊에 왁스를 묻혀 힘들여 닦는 작업은 오랫동안 해야 했다.

 호황을 누리던 우리 가구점은 포마이카 가구가 유행을 타면서부터 서서히 일감이 줄어 들어갔다. 일거리가 없어서 기술자들도 한두 명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기술자 두어 명만 남아 자개농을 만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 가구를 가져가던 도매업자들마저도 발길을 끊었다. 우리 집은 일꾼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모두가 떠나고 남은 적적한 일방에서 아버지는 혼자 가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리도 자주 드나들던 일방에 아버지가 일하고부터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방에서는 라디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판을 대패로 미는 소리, 나무를 자르는 톱질 소리, 망치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그 소리는 예전에 활기차게 들리던 소리와는 다르게 가슴이 아렸다.

 아버지가 만든 가구는 시장에 내놔도 잘 팔리지 않았다. 간혹 우리 집 장롱이 실하고 오래간다는 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주문에 따라 맞춤 가구들을 만들 뿐이었다.

 그나마 아버지는 가구 일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 보루네오가구가 TV 광고에 나오고, 썬퍼니처나 삼익가구 같은 기업 가구들이 시장을 점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 그 집터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과연 그 옛집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 아는 사람은 이제 없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도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버릴 것이다.

 고향에 다녀오고 난 후, 나는 그 옛집이 그리워 오래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나의 옛집은 없다. 일방에서 들려오던 라디오 소리와 웃음소리, 망치 소리, 대패 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옛집의 추억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그 추억은 내 마음속 어둡고 좁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아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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