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계절의 날씨로 분위기있는 글쓰기
7월 초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감도는 바닷가. 밤의 까만 어둠이 벗겨나고 있었다. 뿌연 안개에 싸인 보라색 공간 위에 점점이 떠있는 듯한 커다란 나무 이파리들. 바다와 맞닿아있는 하늘은 검푸른 보라색과 밝은 오렌지색의 파스텔을 섞어놓은 듯한 신비한 빛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울컥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그 무엇도 채워줄 수 없었던 내 존재의 그리움. 갑자기 되살아난 글쓰기에 대한 세찬그리움과, 그리움만큼 과장된 상실감, 그 목마름. 나는 카페 통유리 너머의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새벽빛을 배경으로 서있는 가로등, 노란 불빛을 밝히며 지나가는 차량들. 그 풍경은 한 폭의 영상처럼 내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일행 중 누군가가 바다로 나가자, 하고 외쳤다. 우리들은 바다로 나갔다. 희뿌옇게 트이는 시야. 지평선과 맞닿아있는 바다의 물빛. 넓게 펼쳐진 바다는 잔잔하게 일렁이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S가 겅중겅중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H도 따라 들어갔다. 오렌지색 후광을 뿜고서 손톱만큼 한 태양이 발갛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시야가 밝아오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바닷속에 몸을 담그고 소리를 지르는 우리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바위 위에 서서 아침나절의 바닷빛과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물에서 나온 S와 H가 나를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나를 끌고 그들은 기어이 바닷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들의 힘은 완강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에 끌려들어 간 나는 온몸이 바닷물에 잠겨졌다. 그들은 나에게 물장구를 치며 물을 뿌려댔다. 갑자기 E가 나를 바닷속으로 밀어제쳤다. 나는 얼굴까지 바닷속으로 첨벙 빠져 허우적거렸다. 물을 먹었고, 물에서 나오려고 버둥대는 나를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더 바닷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몇 번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물속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짠 물을 들이켠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나도 그들에게 손장구를 치며 물을 튀겨댔다. 그들은 깔깔거리며 피했다. 피하다가 물속의 바위에 다리를 휘청하여 S와 H가 또 물에 빠졌다. 낄낄대며 허우적거리다가 물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우리는 발갛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삶의 내면에 자리한 근원적인 나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넓고 묵묵한 바다를 누르면서 서서히 태어나는 희망. 그 찬란한 슬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눈물이 비질거리며 흘러내렸다.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가끔 그렇게 알 수 없는 충동이 내 안에서 일 때가 있다. 그것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어떠한 욕망. 물속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울고 있는 나를 뜨악한 얼굴을 한 그들이 바라보았다.
왜 울어?
H가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바닷물 속은 의외로 차갑지 않았다.
물밖으로 걸어 나온 나는 그들보다 앞서 걸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고 숙소를 향해 가고 있는 나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쳐다보았다. 숙소로 들어가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여벌의 옷을 한 벌도 가져오지 못했던 나의 준비성 결여가 후회스러웠다. 젖은 옷들을 빨고 나자 난감해졌다. 할 수없이 담요를 몸에 말고 가렸다. 뒤에 들어온 일행들이 배꼽을 쥐고 웃었다. 사진을 한 장 찍어야 한다느니, 튀는 사람은 어디서나 튄다느니, 하면서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
여벌의 옷이 없어서 담요로 몸을 둘둘 말고 방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을 하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M이 밥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M은 미나리를 씻고 있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17년 차인 주부답지 않게 어설펐다. 나는 그녀 옆에서 담요를 두른 채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라라, 찌개에 양파를 넣으면 단맛이 나니까 넣지 말아라. 매운탕에 무를 이렇게 깍두기 썰듯 큼직하게 썰면 어떻게 되느냐, 잔소리를 하다가 S의 잠바로 몸에 두른 담요를 묶어 매고 비켜봐, 내가 할게. 하고 팔을 걷어부쳤다. 그녀는 쑥스럽게 웃으며 자리를 비켰다. 나는 매운탕에 간을 맞추고 설거지를 했다. 찌개가 다 되자 M이 모두들 일어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밥을 푸고, 자, 빨리빨리 날러!"
H가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지 않은 얘들을 S가 깨웠다.
"빨리 일어나, 안 일어나면 이불 걷어버린다."
일행들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난 밥맛이 없었다. 입안이 깔깔했다. 몇 번 끼적거리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H와 N이 설거지를 끝내자, 나는 줄에 걸려있는 젖은 옷을 드라이기로 말리기 시작했다. 속옷도 드라이기로 말렸더니 금새 말랐다. 일행들은 내 옷이 다 말라가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설악산 입구를 한 바퀴 돌고 오자는 M의 말에 우리는 설악산 입구를 들어갔다가 돌아 나왔다. 이왕 바다에 왔으니 바닷가 쪽으로 드라이브하다가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거기서 내려 구경하자는 내 말에 M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바다를 보며 지나가다가 낙산해수욕장에서 내리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모래밭을 걸어 들어갔다. 드넓은 바다가 햇빛을 받아 은비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H와 S가 팔을 높이 쳐들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함께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B가 모터보트를 타자고 했다. H가 무서워서 싫다고 하다가 타자고 했다. 모터보트는 5명이 탈 수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모터보트를 탔다. 나머지 일행도 다른 모터보트를 탔다.
푸르게 펼쳐진 바다를 가로지르며 모터보트는 속력을 냈다.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기분은 스릴 만점이었다. 때론 파도에 밀려 보트가 움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비명이 흘러나왔다. 보트가 바다 위를 가로지으며 나아가자 물살이 하얗게 부서지며 원을 이루었다. 하얀 구름이 점점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은 빙글거리며 돌았다. 바다 위에 떠있는 나, 하늘, 투명한 햇살, 속력을 내는 보트.
“바다야, 나를 다 가져가! 나를 다 가져가!”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이 깔깔거렸다.
보트에서 내린 우리들은 사진을 찍은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M이 속초 비행장 옆에 맛있는 막국수집이 있다 하여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M이 모는 차를 따라갔다. 난 차 안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M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해조대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숲에서 은은한 향기와 신선한 바람이 기분을 맑게 했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하얀 등대가 나타나고 바다 위에 군데군데 뜬 작은 섬들이 아름다웠다.
바위 옆에 탐스럽고 빨간 꽃이 한 송이 외롭게 피어있었다. 꽃의 이름이 해당화라고 일행 중 누가 말했다. 잎에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가시를 돋우고 홀로 피어있는 꽃은 애잔해 보였다. 나는 코를 갖다 대고 흠흠거렸다. 향기가 진했다. 섬 위를 올라서니 군데군데 보이는 섬들과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해조대. 바다와 새가 살고 있는 섬.
그 섬은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섬이었다.
우리들은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다. 여행을 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를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해조대를 내려온 우리 일행은 서울 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 너머로 여름날의 긴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 마음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새벽의 푸르스름한 바닷빛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꿈틀거림이었고, 지친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희망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