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날씨로 분위기 있는 글쓰기

by 제니아

차정윤-제10강, 계절의 날씨로 분위기 있는 글쓰기


계절은 본격적인 겨울의 초입을 지나고 있다. 낙엽도 인파도 없는 남산길을 돌던 때, 겉옷을 벗어 들기엔 맑고 청량한 차가운 바람끝이 오히려 옷깃을 여미게 했다. 오랜만에 도심을 걷는 나란한 발걸음에 그 바람이 힘을 보탰다.


어제, 그 바람끝이 유년의 기억 한 자락을 불러왔다.


눈은 오지 않고 사위는 온통 희끄무레하던 봄방학 무렵, 집으로 돌아가던 하굣길의 맞바람. 지천이던 보리밭의 잔잔한 풀빛과 이랑의 푸석한 흙내음을 동반한 채 폐부로 스며들던 서늘함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감기를 모르고 자랐고,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기초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어제는 조금 무리였던가. 예정된 시간을 앞두고 마음먹은 곳을 다 돌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도심을 옮겨 다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기운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는지, 간간이 택시를 이용했음에도 오늘은 거실에 오래 앉아 있다. 날씨 예보는 어제와 다르지 않지만, 베란다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오후의 풍경은 한결 포근하다. 늦은 하오, 남서향 거실로 들이비치는 석양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채 내 발밑에 머물러 있다.

나는 나의 거실과 베란다를 자랑한다.


‘생일을 축하합니다.’
실없는 문자다. 오늘은 나의 (구) 양력 생일일 뿐이다. 나는 음력 날짜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양력 생일을 따로 가지고 있다. 얼음의 눈동자 같은 열엿새 달이 산 허리에 걸린 밤 아홉 시를 넘긴 때,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에 나는 태어났다. 막바지 섣달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 산파도 도우미도 없이. 당시로서는 드물던 큰 기와집, 홑겹의 창호지 문틈으로 그 겨울밤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던 산후의 시작. 아니, 이 모든 것은 내 생의 시작이었다. 추웠다.


집은 북향이어서 열한 시쯤 마당을 비추던 멍석만 한 햇발은 오후 두 시가 되면 어김없이 거두어졌다. 곡식을 말리던 손길은 두세 배의 수고가 더 들었다. 이웃집 초가지붕에서 그렁그렁 녹아내리던 고드름 위로 햇살이 비칠 때면, 툇마루에 졸고 있던 흰 머리의 할머니가 부러웠다. 나는 늘 햇빛을 희망했으나, 결혼 후 신접살림을 차리고 오랫동안 지냈던 집 또한 사정은 비슷했다.

‘춥기 아니면 덥기.’
날씨를 대하는 나의 표현법이다.


남산 순환길은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질 때가 좋다. 그때의 바람은 더 순하고 다정하다. 이태원의 골목길도 온화한 가을빛과 함께라면 오늘보다 더 감상적일 것이고, 길상사 또한 계절이 비켜나 호젓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못지않게 오늘도 좋다. 오랜만의 동행이 있었고, 계절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는 감각을 다시 확인한 하루였다. 낯설지 않게 익어가는 시간의 표정이 풍경 속에 겹쳐 보였다.

이맘때의 계절이 좋다고, 설명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씨가 있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되는 기온과 바람의 결. 말해지지 않은 사정이 있어도, 결과는 결국 몸이 먼저 안다.


변함없이 예전으로 돌아와 있다.
춥기 아니면 덥기.
춥다.




매거진의 이전글그 여름 새벽 바다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