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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Sep 23. 2024

 프롤로그/
꿈을 갖고 살든가, 희망없이 죽든가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신문사마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한다.

당선 작가들은 신춘문예 시상식 단 하루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끝. 대한민국 최고의 등용문인 신춘문예 당선을 하고, 작가가 되었다고 해봐야 당선자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 글 쓰는 사람이 글 써서 발표할 곳도 없다. 한때 문학에 인생을 걸었건만, 문학을 위해 인생을 건 신춘문예 당선자의 글이 생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슬픈 일이다.


너무나 직설적인 얘기지만,  해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작가들 대부분 글 써서는 '먹고살 수' 없다.

창작의 고통을 말할 때, 흔히 '뼈를 깎는다'라는 표현을 한다.

무엇에 취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깊은 밤, 단단한 껍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의식의 뚜껑을 열고 뜨거운 불꽃을 향하여 탐닉하는 열망을. 밤새워 미혹에 빠져들었다가도 아침이 되어 삐죽삐죽 돋아나와 나 뒹굴고 있는 문장들과 부딪히게 되면 휩싸여 오는 허탈함을. 하지만 애물단지 자식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언어들을 끌어안고 다시 새벽을 맞아야 하는 열패감을.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뿌연 그 실체들은 나타날 듯 나타날 듯하다가 점점 더 제 몸을 감추어버리는 안타까움을.


그 누가 알까.

어느 한 곳에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깨끗이 포기도 못 하는 괴리 속에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신열에 들떠 앓는 마음의 병을. 글을 쓰다가 절망하고,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남의 책을 읽다가,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쓰다가, 또다시 덮다가를 반복하는 고뇌의 나날들을.

그 결과가 겨우 끼니 걱정이라니.

최소한의 생활도 할 수 없는 문학의 길을 가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싸우고 있는 이 나라의 문청들. 그들이 소망하는 꿈. 잘 될 거라 믿고 나아가는 희망. 그것들은  허상일까. 쓸데없는 시간 더 이상 소모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정신차리고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 해야 하나.

문학 창작이 생계를 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창작의 뼈를 깎는 고통이 최소한의, 아니 그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내 어릴 적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백일장에서 상을 탔던 나를 학교에서도 치켜세웠고, 선생님들도 나에게 작가가 되라고 독려했다. 하지만 나는 글과는 무관한 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니 작가의 꿈은 요원해졌고, 그 꿈은 나에게 이룰 수 없는 영역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갈수록 내 가슴은 공허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 시부모의 며느리였다. 내 존재의 그리움은 끊임없이 갈망하며 나에게 손짓했다.


사십 대 중반, 늦은 나이에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늦은 나이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그것은 항상 나를 위축시켰고 주눅들게 했다. 학생들 논술 수업을 밤늦게까지 하느라 시간에 쫓겨 항상 소설 쓰는 시간은 부족했다. 가족들이 다 잠든 밤에 혼자 소설을 썼다. 집필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방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펴고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자다가 깨서 물 마시러 나온 남편이 내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참 팔자다. 편히 살지 왜 사서 고생을 해? 못 말린다. 누가 시킨다고 그 짓을 하겠냐!”

그날 이후, 소설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는 듯했다.


소설을 쓰는 일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먼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 멋모르고 뛰어든 바닷속은 너무 막막했고 두려웠다. 뒤늦은 후회와 절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도망치듯 바닷가로 기어 나왔다. 몸에서는 짠 물이 뚝뚝 흘러내렸고 내 지친 숨소리는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에 묻혔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말리고 나섰다.

“공연히 뜬구름 잡는 짓은 이제 그만해. 송곳이 자루에 들어가면 삐져나오는데, 당신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여태 그러고 있었겠어?”

급기야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당신이 소설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자존심이 나를 괴롭혔다.

‘반드시 보여주고야 말겠어.’

오기가 발동했다. 기어코 남편 손에 장을 지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송곳이 아니었던 나는 자루 속에서 삐져나오지 못한 채로 늘 갈등했고 미완의 언어들과 싸우며 전전긍긍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만 6년 만에 신춘문예 당선이 되었다. 드디어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당선 통지를 받자 울컥 눈물이 나왔다. 남편은 나를 등에 업고 집안을 돌며 환호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결의에 불타있던 날이었다.


새로운 각오로 글을 쓰고 발돋움하려고 했지만, 운명의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그해 가을, 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난 소설가로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즉,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오랜 갈등 끝에 과감히 글 쓰는 것을 포기했다. 절필하겠다고 다짐한 날 밤 울면서 꼬박 밤을 새웠다.

생활 전선에 뛰어든 내 마음은 비장했다. 행여나 글이 쓰고 싶어질까 봐 의도적으로 일기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철저히 글 쓰는 세계를 외면한 채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내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무슨 일을 해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가슴속은 텅 빈 채로 허허로웠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휴일이면 전국 둘레길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요즈음 다시 글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절필 하는 동안 내 몸의 감각과 리듬감이 굳어 있음을 느끼고 있지만, 글 쓸 때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 한 줄 때문에 종일 컴퓨터 앞을 서성거리며, 머리를 무릎에 박고 절망하던 그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한 줌의 재가 되어 꺼진다 해도 후회 없을 열망에 미치고 싶다. 나를 온통 던져 불태워 버릴 치열함을 갈구하고 싶다. 내 몸의 감각 세포가 모두 일어나 희열의 향기에 취하는 글쓰기에 미치고 싶다. 언제쯤이면 내 영혼에서 삶의 소리와 빛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지, 그날을 위해, 그 순간을 위해 글 쓰는 작업은 생이 다할 때까지 멈추고 싶지 않다. 그 행위는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장면, 국경을 향해 엔디에게 가던 레드가 말한다.

 “희망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 무사히 국경을 넘길 희망 한다, 희망한다.”

 나도 레드처럼, 희망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남길 희망한다,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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