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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1

by 정윤

날씨는 좋았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상쾌했다.
길이 조금 막혔으나 우리는 그저 떠난다는 기대감에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수다를 떨었다. m의 싱거운 농담에 차 안은 웃음소리가 터지고 차는 서서히 동해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웃음이 나던 시절로 돌아간 듯, 누군가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는 가을 길을 달렸다.


고속도로가 막혀 국도로 접어든 우리는 강변도로를 달리며 창밖의 가을풍경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알록달록 물이 든 가을 산의 정경이 그대로 비추이는 강의 모습. 오늘따라 하늘빛은 왜 이리도 파랗고 맑은지. 차창 밖의 가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다.


k가 아침부터 내내 굶었다며 식당 간판을 읽기 시작한다. 산골식당, sbs 추천 맛 집, 명가네 식당. 다들 시장기가 동한 듯 식당 간판을 읽기 시작한다. 모두가 밥을 먹자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차는 이천을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이천 보리밥집 도착.

도자기의 고장답게 이천에는 식당에도 도자기 일색이었다. 먼저 구수하고 따듯한 숭늉이 단지 가득 나오고, 파전이 나왔다. 모두의 젓가락들이 한꺼번에 파전을 공략해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각종 나물과 보리밥이 한 상 가득 나오자 모두들 조용히 먹기에 열중이다. j는 카메라폰을 들고 음식을 찍고, 쌈을 싸 먹으며 누구의 입이 가장 큰지 연신 카메라폰을 눌러대기 바쁘다. 까르륵 웃음이 터지고. 밥을 먹고 나서는 또 배가 불러 못 가겠다고 부른 배를 두들기며 웃음이 터진다. 배가 고파도 웃음, 배가 불러도 웃음이다.

서서히 어스름이 밀려오고,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차창 문을 조금 열어보았다. 이곳은 공기부터가 다디달다. 약간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더욱 청량하고 상쾌한 바람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듯하다.


선루프를 열었다. 깜깜한 하늘 위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별빛인가. 어릴 적,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보던 별빛. 그야말로 별이 내 몸 위로 모조리 쏟아져 내릴 것 같던 그 별들의 모습이었다.


“언니, 저 별들 좀 봐봐. 너무 이쁘지? 그렇지!”
“저건 오리온자리, 저기 저건 사자자리.”
“어머 어머 어쩜, 북두칠성도 보이네.”


우리는 사각 창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하나, 둘, 세며 어린 날의 추억에 젖어들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강릉에 도착했다. 콘도 앞에는 차들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도 차는 한 치의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는 시기여서 인지 올 들어 최고의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횟집으로 향했다.

몇 순 배 술잔이 돌고 모두의 얼굴들이 발그레해진다. 취하는 건 소주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와, 가을바람과, 별빛과, 그 별빛에 얽힌 어린 날의 추억 속으로, 그렇게 가을밤은 깊어져 간다.

숙소에 돌아오자 누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화투판이 벌어진다. 나는 화투에 관심이 없어 침대 위에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다. 화투판에서는 희비가 엇갈린 듯 탄성과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와 화투판을 기웃거려 본다. j의 앞자리에 만 원짜리 배추 잎이 제법 있다. m과 s의 자리에는 천 원짜리 몇 장만 굴러다닌다. 그나마 d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진짜 꽃뱀이네~~~!"
d가 탄식한다.
“오늘 저녁 남자들이 꽃뱀한테 물려도 단단히 물렸어.”
옆에 있던 s와 d가 거든다.
드디어 화투판은 j의 KO승으로 끝이 났다.


노래방에서 우리는 모두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고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오늘은 m과 s의 엉덩이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밤이었다. 노래방에서 두 시간 여의 여흥이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잠들면 새벽에 못 일어나. 잠들면 안 돼”


나의 말에 모두들 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내일 아침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기로 한 터라 모두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새벽 3시가 지나자 모두들 눈꺼풀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m은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지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눕는다.


“그냥 누워만 있으려고요. 그래도 되죠?”

자리에 누운 m이 코를 골기 시작한다. 옆에서 보고 있던 s도 슬그머니 자리에 눕는다. e와 k도 잠이 들고, d도 잠이 들고 말았다. j와 내가 버티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눕는다. 불을 끈 방안 사람들은 꿈나라에 빠진다. 건넛방에서 m의 코 고는 소리와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기계적으로 교차되어 들려온다.

내일 아침 정동진 해돋이는 꿈이런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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