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처럼, 여행은 삶처럼
어머니 약 처방을 위해 파티마병원에 왔다.
오랜 기다림에 비해 의사와의 상담 시간은 짧다.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차피 보호자만 왔으니 진료라고 할 것도 없다.
“어른은 좀 어떠세요?”
“네. 여전하십니다.”
“음... 그럼 3개월 치 처방하도록 하겠습니다.”
처방전을 받고 다음 내원일 예약을 했다.
‘3개월 후 수요일 아침 시간’
휴대폰을 열어 예약한 내용을 일정에 기록한다.
약국에 앉아 다음 예약 일을 찾아 입력하는 일.
10년도 넘게 반복하는 일이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3개월 후란 시간이 현실적으로 오는 것일까?’
‘그때면 계절이 바뀌어 있듯이 지금의 상황이 달라져 있을까?’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의 죽음만은 절대 믿지 않는 것처럼 단지 3개월인데도 현실감이 없다. 그러다 병원 가야 할 날이란 걸 알고 ‘참 시간이 빠르다’라고 느낄 뿐이다.
주차장을 돌아 나오자 쨍한 햇살에 눈이 찌푸려진다. 다음번에는 선선한 가을바람을 이 길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앞 아파트 공사 현장의 모습도 달라져 있을 테고. ‘참 시간이 빠르다’라고 또 느끼겠지.
어머니 연세가 90을 훌쩍 넘기셨으니 얼마나 오래 이일을 반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마치 끝이 없을 것처럼 희망하는 나 자신이 애처롭다.
3개월마다 병원을 향하면서 세월을 깨닫는다. 그 자각으로 현실을 돌아보면 익숙했던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새로운 시야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분명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행안내서에는 나오지 않는 시시한 관광지에 대한 소개도 있다. 소문난 맛 집은 아니더라도 맛있게 먹은 식당 얘기도 있고, 심심하고 무료한 풍경에 긴 여운을 남기는 글도 있다.
무작정 걸으면서 떠오르는 상념에 관한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도 있고, 어머니처럼 늙어 가고 싶다가도 두려운, 나이 듦에 대한 환상에 젖기도 했다.
오십을 훌쩍 넘기고 돌아보니 인생이 마치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남은 날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하며 어디서 살든 여행자로서의 태도에 관해 고민해 본다.
궁극적인 여행의 설렘을 생각하면 때때로 닥치는 어려움은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좋은 추억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어머니는 어떤 여행자로서 살아오셨을까.
이제 사회로 나가는 내 딸은 또 어떤 모양으로 여행을 하게 될까.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며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먼저는 나를 위한 것이고, 다음으로 함께 인생을 여행하는 동지들과, 나아가 무수한 갈림길에 서 있는 중년들을 위한 책이다. 누군가 책을 읽고 잠시 멈추어 서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감사하겠다.
습관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효용성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무모할지라도 당당하게 자신만의 여행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