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대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by 다섯시의남자

내가 기대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가끔 서점에 놀러 갈 때가 있다. 여유를 갖고 어슬렁거리며 둘러본다. 특히 여행기를 좋아해서 그쪽 코너에는 한참을 붙어 있게 된다. 제목을 보고, 저자를 살피고, 목차를 보고, 넘겨가며 몇 줄씩 눈 가는 대로 읽어본다. 서점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독서가 시작된다. 책에 마음을 주고 시간을 내는 것, 여행처럼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여행 또한 독서처럼 계획을 짜면서부터 이미 시작된다. 예약을 잡고, 짐을 챙기고, 신발을 동여매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미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똑같은 책이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과 같다. 어떤 태도로 마주 하느냐에 따라 일상을 여행처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새 책을 펼칠 때의 즐거움이나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설렘은 큰 기쁨이다.


좋아하는 장소 중에 일본에 있는 <운젠>이라는 곳이 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다. 유황이 부글부글 끓는 지옥온천이 인기지만, 나는 오히려 아랫동네 골목길이 더 궁금했다. 관광객을 위한 대규모 온천탕보다 200엔이면 즐길 수 있는 동네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입구 벤치에서 동네 주민들과 한국 드라마 얘기도 하고. 그런 소소한 추억이 그립다.


생각해 보면 여러 곳을 여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를 딱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직 다녀 본 곳이 많지 않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소박하고 심심한 곳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국내 여행에 대한 추억도 별로 없다.

가까운 경주 몇 번, 바다 보러 감포에 몇 번, 제주도는 20년 동안 세 번 갔었다. 서해나 남해 쪽도 멋진 곳이 많을 텐데. 몇 군데 정도는 가보긴 했겠지만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분명 여러 곳을 다녔다. 여행으로도 갔고, 업무 차 방문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이었다고 단정 지을 정도의 기억으로 남지는 못한 것 같다.


아산에 있는 단식원에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나, 겨울에 단양으로 짧은 여행을 혼자 다녀온 것이 생각난다. 거기서 본 것이 기억에 남은 게 아니라 그때의 그 고요가 가슴에 남아있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할 일없이 보낸 며칠이나, 러시아 횡단 열차 여행 중 들른 이르쿠츠크의 차가운 거리들, 바이칼 호수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

차분한 여행이 사실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내가 기대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여행을 통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을 내놓았던가?’


코로나가 끝나면 떠나야지 생각했다. 틈만 나면 여행 사이트를 뒤지고, 블로그를 읽고 유튜브를 찾았다. ‘이제 슬슬 떠나볼까’ 하는 마음이 속에서 차오르고 있다. 간절함이 다 차서 주위의 복잡한 여건들을 다 잊게 할 그날이 되면 새로 만든 여권을 들고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날 골목과 사람들과 골방 같은 안식처를 꿈꾸며 오래전부터 기대하던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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