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by 다섯시의남자

언제부터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학시절 모습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습관적으로 자판기에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잔 뽑아 든다. 중앙도서관 로비에 있는 신문 열람대에서 여러 신문을 어슬렁거리며 뒤적인다. 헤드라인 뉴스를 쓱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어느새 아래쪽 광고란에 있는 여행사 광고 쪽으로 내려간다. <북경 3박 4일 25만 원>서부터 유럽과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뉴스’가 있다. (당시에는 왕복 항공료도 안 되는 금액으로 패키지 상품이 구성되어 있기도 했다) 신문 열람대를 붙들고 있지만, 뉴스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여행 광고를 보는 사람도 있구나”라며 신기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억지로 누가 시킨다고 보는 건 아니다. 내게는 그게 신문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이었는지 모른다.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고 다음 해부터 해외여행이 자율화가 되었다는 사실도 생경하다. 아주 먼 옛날부터 여행은 가고 싶을 때면 언제든 떠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신문 광고란 하단에 여행 상품이 올라온 것도 내가 군대를 제대할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90년 겨울에 드디어 도쿄로 떠났다. 혼자였고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었지만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지냈다.

도착 다음 날 이케부쿠로에 있는 빅카메라 전자상가에서 이천엔 주고 싸고 예쁜 디자인의 자동카메라를 샀다. 일주일 후에 신주쿠에 있는 가게에서 새벽 알바를 구했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막바지에 들 무렵이라 아르바이트 자리는 차고 넘쳤다.

새벽에 알바를 하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전철 야마노테센을 타고 매일 한 정거장씩 동네 투어를 다녔다. 작은 집이며 가게마다 소박한 정원이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거나 동네 깊숙한 곳이면 어김없이 있는 공원에 들어가 벤치에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나는 언제부터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신문 광고란을 들여다볼 때였는지, 티켓을 끊을 때부터였는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처음 갖게 된 때부터였는지.(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비행기를 타기 훨씬 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행 중이다. 어쩌면 나뿐 아니라 누구나가 여행 중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쓸려 다닐 수도 있고, 흐름과 다른 방향을 개척하느라 무척이나 고단한 삶을 이겨내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여행 중’이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이기에 반드시 여행에는 끝이 있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다 보니 너무 많이 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특별한 의미 부여를 떠나서 실제로 여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코로나 이전에는 초등학생들도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오면 “넌 어느 나라 갔다 왔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홈쇼핑 채널에서는 여행 상품이 쏟아지고 있었고, 방송에서도 여행 아니면 먹방, 아니면 여행지에서의 먹방으로 연예인들이 먹고살았다. 여행 에세이 작가나 여행 유튜버가 창궐했으며 전 국민이 여행가라도 되는 분위기였다.

2021년 1월과 2022년 1월에 여행 유튜브 1위를 차지한 채널의 구독자 수는 일 년 만에 73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엄청나게 늘었다. 현실 여행의 갈증을 유튜브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자주 본다. 그리고 더 갈증을 느끼고 더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잡아보곤 한다.


일기장에 써도 될 얘기를 굳이 증거로 남기려는 것은 왜일까. 여행을 다니자는 캠페인도 아니고, 인생에 관한 철학적 명제만을 붙들려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나만의 답을 발견해 가고 싶고, 타인의 삶의 여행을 들여다보고 더불어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을 뿐이다.


매일 아침 여행처럼 집을 나선다. 물론 집을 떠나 정말로 낯선 골목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매일 여행지에서 숨을 쉴 것이다.


내 삶이 언제부터 여행임을 깨달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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