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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멀고 공항은 가깝고

직장은 멀고 공항은 가깝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떠난다.

여행의 목적이 있다면(굳이 목적을 갖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마다 다르지만 이번 여행의 의미(목적)는 침묵이다.

몸이 쉬는 것처럼 말을 멈추고 침묵하고 싶다.

휴가를 의미하는 ‘바캉스’는 “텅 비어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디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휴가는 신나게 노는 것뿐 아니라 비어내는 행위가 내포되어 있다.

슬슬 떠나보자. 자신도 모르게 채워져 있는 무거운 상념들을 배낭에 샅샅이 욱여넣고 여행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흘려보자.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구멍 난 주머니 사이로 파낸 흙을 조금씩 흩은 것처럼 천천히, 남김없이...

한꺼번에 다 비워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가볍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잠시 공항이다.

공항은 늘 분답다. 출국장의 사람들은 대부분 뜬 모습이다. 중년의 단체관광객들의 소란이 정겹다. 마감을 알리는 방송과 어우러져 마치 장날의 풍경처럼 활기차다.

1시간이면 후쿠오카의 흐리고 조용한 동네로 날아갈 것이다. 진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민박집의 다인 실 방에서 몇 날을 보낸다. 산책을 하고 카페에 앉아 빈둥거리는 것 말고 달리할 건 없다.

예정대로 침묵할 수도, 다인 실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와 오래도록 수다를 떨 수도 있다.

어쨌든 습관처럼 반복하던 ‘말’을 멈출 수 있는 시간이다.



침묵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일상에선 서 있지 않을 곳에 서서, 생각지 않을 일들을 떠 올리고, 상념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발견을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관해 깊이 사유한다. 침묵을 통해 예상보다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있다.     


일상의 공간은 마음에서 멀리 있고 여기 공항은 그리운 추억처럼 항상 가까이 있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늘 지나고 나서야 깨우친다. 흐름을 잠시 멈추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침묵한다. 누구나 그럴 틈을 내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섯_시의_남자

#우리가_중년을_오해했다

#낯선거리_내게_길을_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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