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죽이며 자라난 아이

by 레나

"레나 씨는, 항상 침착하고 행동도 빠르고.. 대단한 사람 같아요."

"...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뇨, 다 만들어낸 거예요.

그거 제 모습 아니에요.

다 거짓이라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활발하고, 말이 많았고,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렀던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엄마는 거짓말을 세상에서 가장 경멸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그녀 안에 묻혀있던 그림자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순간,

엄마의 '훈육'은 총구처럼 곧장 나를 겨눴다.

나는 늘 숨을 죽이며 집 안의 공기를 먼저 읽어야 했다.

아이였던 내가 버티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정이

그 집을 오래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시험지에 사인을 받아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이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나에게서 '잘못'은

곧바로 생명의 위협으로 연결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베란다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작고 더운 공간에 앉지도 못한 채,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가방에서 손에 닿는 아무 볼펜을 쥐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필체를 기억나는 대로 더듬어 따라 썼다.

손끝이 계속 떨려 누구라도 보면

어린아이의 글씨라는 것이 분명했다.

숨도 못 쉬고 세 글자를 써 내려갔다.

손발이 얼어붙었지만 그럼에도 볼펜을 놓지 못했다.

그 한 글자를 잘못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누구보다 빨리 등교해서

그 시험지를 서랍장 깊은 곳에 밀어 넣었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서랍장에서

시험지를 꺼내어 그 사인을 확인했다.

어딘가 어색하게 흔들려있는 글씨,

누가 봐도 어린아이의 흉내였다.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모두들 부모님의 정성 어린 사인이 담긴

시험지를 제출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선생님은 내 시험지를 들고 곧장 내 자리로 걸어왔다.


"이 사인, 네가 한 거 맞니?"


손발이 차갑게 식어갔다.

내 입은 열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내 침묵이 그 모든 것을 인정해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가슴 깊은 곳을 누군가 아주 천천히 짓누르는 듯했다.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몇 번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려 했다.

하지만 공기가 목에서 자꾸 걸렸다.


이런 날이면 늘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길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눈앞이 하얘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숨이 안 쉬어진다고 힘겹게 말하며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엄마는 내 손을 끝내 잡아주지 않았다.

대신 잔뜩 찌푸리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이내 쓰러진 나를 향해 낮추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쪽팔리게 굴지 마."


그리고 나를 뒤에 두고 빨리 쫓아오라며 걸어가 버렸다.

나는 휘청이며 일어나고는 깨달았다.

이 집에서 나는,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새벽에 쫓겨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던 날,

그런 나를 비추던 경비원의 손전등 불빛,

그리고 온몸에 들어있던 멍.

그 기억들은 언제나 같은 결말로 흘러갔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듯 중얼거렸다.

아- 모르겠다. 그래, 죽기야 하겠어....

그 말을 속으로 삼킨 채,

그 어느 날보다도 무거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에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한 엄마가 서 있었다.

분명 나를 보고 있는 듯했으나 아니었다.

그 눈동자에 서린 분노와 경멸은

이상하리만치 차갑고 서늘했다.


그리고 한 손엔-

그 눈동자보다 시퍼런,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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