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일기 & 교사일기
늘 부족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만 막상 새로운 것 앞에서는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딛는 한 걸음의 가치와, 거기서 오는 모든 감정과 짜릿함, 뿌듯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원동력 같은 건 없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낙차에서 오는 진흙밭을 구르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저 해맑게 웃으며 '즐겁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삶이란 어쩌면 아주 의미 없는 것들이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은 이들은 매일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짜증 나고, 하기 싫고, 때려치우고 싶고, 때로는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순간도 분명 오겠지만, 의미를 찾은 이들에게는 그것 또한 과정 중 하나로, 담금질 정도로, 고통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저는 그래서 이 일이 좋습니다. 노력한 것에 비해 쥐꼬리만한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찬란한 미래보다 암울한 현실이 더 커 보일지라도 제 이야기로, 제가 펴낸 말들로, 제가 계획한 공간에 온 모든 이들의 삶의 어떤 순간에 아주 일부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가 저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때마다 늘, 온몸에 전율이 돌습니다. 어떨 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합니다. 주책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과정과 기쁨을 한 차의 오차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낸 제가 가장 당당하게 느낄 수 있는 일의 기쁨입니다.
- 김상현, <헤맨 만큼 내 땅이다>
p21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기쁨'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사람이라서 퀼트, 비즈공예, 기타 연주, 운동, 덕질, 글쓰기, 독립출판 등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그만두길 반복했다. 그런데 그중 교사로서 수업에 쓸만한 것들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그다지 손꼽을만한 게 없다. 인공지능 수학 수업에 도움을 받아보고자 두 번의 방학을 꼬박 들여 이수한 정보컴퓨터 부전공 자격증은 바로 다음 해에 중학교로 옮기는 바람에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고, 나머지도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 내게 2025년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과 시도가 교사로서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던 한 해였다. 막연한 도전의식을 갖고 시작하게 된 수업혁신사례 연구대회 준비. 그게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으니 1월부터 티처빌과 지식 샘터에서 닥치는 대로 연수를 들었다. 그렇게 브리스크 티칭을 알게 되고, 챗 GPT와 친해지게 되면서 조금씩 연구대회의 틀을 잡아갔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 상통하던 '깊이 있는 수업'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고, 2022 개정 교육과정 해설서를 읽고 또 읽었다. 20년 동안 쌓인 경력으로 이제 중학교 수업은 교과서 없이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올해 새로 만나게 된 지식 안에서 확장할 수 있는 수업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교직 21년 차에 뒤늦게 눈 뜬 에듀테크의 세상은 짜릿하고 황홀했다.
하지만 내내 그렇게 짜릿한 건 아니었다. 나보다 일찍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교사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니 현타가 올 때도 많았다. 난 지금까지 뭘 했나 싶고, 왜 이제야 시작했나 후회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걸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렸다. 가정적으로 닥친 어려움 또한 배움의 길을 가로막는데 한몫했다. 넘어지고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지독한 슬럼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비교를 멈춰야 했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독하게 배우고 공부했더니 수업이 역동적으로 변했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이들은 나의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놀라울 만큼 훌륭한 산출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 연구대회 입상이라는 고마운 결과로 돌아오게 되었다.
3월 초 무기력하게 교과서에 낙서를 하고 있던 아이가 2학기 들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수업을 들으며 내 질문에 대답까지 곧잘 하던 모습이, 축구 선수를 꿈꾸며 선수로 훈련을 다니던 수포자 녀석이 2학기엔 모둠장 역할을 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던 변화가, 내 수업 덕분에 싫어하던 수학이 재밌어졌다고 내년에도 나에게 수업을 듣고 싶다고 쓴 피드백들이, 20년 동안 조금씩 수업에 무뎌진 지금의 나도 충분히 멋진 수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조만간 관리자로의 길을 가고자 승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제 몇 년 후면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될 텐데, 이렇게 열심히 수업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게 가끔은 좀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몇 년 동안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을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계속 달리게 만든다.
작년에 너무 달렸으니 올해는 좀 덜 달려볼까 하다가도 공람을 뒤적이며 기웃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12월에 이미 올해 활동할 연구회에 가입을 해버렸고, 티처빌 교사성장학교 겨울방학 연수를 세 가지나 준비 중이며, 1월에 터치 교사단 집합연수, 2월에 찾학컨 강의 두 건이 잡혀있다. 12월 31일부터 60시간짜리 4학점 연수도 듣기 시작했는데 1월 지식 샘터 연수도 4개 수강 신청해 두었다. 점점 빡빡해지는 캘린더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헤맨만큼내땅이다 #김상현
#무언가를만들어낸다는것의기쁨
#무언가를배운다는것의희열
#성장하는나를지켜보는뿌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