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면서 교수법이 탁월했던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n, 1918~1988)이 한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듣기 전의 일상적인 제 수업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다면, 지금은 '무엇을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 유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학생이 스스로 필요한 내용을 찾아서 공부하는 능동적인 수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교시별 첫 5분을 어떻게 진행할지를 가장 많이 고민합니다.
오늘은 강의 시작부터 3학년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요즘 애들 인사를 안 해요~ 1학년들이 허리를 안 굽혀요~”
“우리 보면 그냥 지나쳐요~ 다른 학과는 인사를 크게 하는데….”.
학기 초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선후배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군요. 학생들의 고민을 공감하며, 오늘 수업에 대한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ㅎㅎ 그렇다면 오늘은 1학년이 인사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인사하는 동작에서 몸통을 앞으로 구부리는 동안, 골반에 대해 허리를 굽히는 허리 굽힘 단계와 넙다리뼈에 대해 골반을 앞으로 기울이는 엉덩관절 굽힘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허리와 엉덩관절의 문제가 없을 때, 몸통을 앞으로 구부리면 4:6 비율로 허리보다 엉덩관절이 더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인사를 할 때 허리보다 엉덩관절의 움직임이 더 많은 것입니다.
“앞으론 인사를 똑바로 안 하는 후배를 보면 허리 안 숙이니? 가 아니라 엉! 덩! 관! 절!더 안 굽히니?라고 해야 해.”
엉덩관절을 스타카토로 말했더니 학생들의 웃음이 터집니다.
"그런데 허리와 엉덩관절 중에 한 부위가 잘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일 허리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으면, 허리 대신에 엉덩관절을 더 많이 사용해서 몸통을 앞으로 굽히게 됩니다. 이러한 동작이 반복되면 엉덩관절의 과도한 사용으로 엉덩관절에 압박을 주게 되고, 이러한 자극이 반복되면 엉덩관절의 퇴행성 관절염을 유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엉덩관절의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엉덩관절뿐만 아니라 허리의 움직임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반대로 엉덩관절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으면, 엉덩관절 대신에 허리를 더 많이 사용해서 몸통을 앞으로 굽히게 됩니다. 이러한 동작이 반복되면 허리뼈 사이에 있는 추간판(디스크)이 받는 압박이 증가하게 되고, 허리뼈 사이의 뒤쪽공간으로 빠져나오면서 허리 디스크 증상을 유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허리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허리뿐만 아니라 엉덩관절의 움직임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허리나 엉덩관절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다양한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과목들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는 것이니, 힘들어도 자부심을 느끼고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이처럼 아픈 곳을 집중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주변 관절들의 움직임도 확인하여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은 해부학적인 구조를 배우고 구조 간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서 눈에 보이는 원인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환자의 일상을 개선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많이 움직이는 부위가 건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손상될 위험 있는 거예요.
"이제 선후배 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첫 번째로 내가 먼저 인사하세요.
“안녕~ 1학년이구나~ 난 3학년 누구야~”.
후배도 선배를 인지하고 따라서 인사하지 않을까요?
두 번째로 내가 왜 선배인지 알려주세요.
허리보다 엉덩관절을 너무 굽혀서 인사하는 후배가 있으면,
“후배님은 지금 '허리의 움직임이 제한'되어서 엉덩관절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앞으로 엉덩관절이 아플 수 있어~ 우리 나중에 만나게 되면 허리의 움직임을 개선해서 엉덩관절을 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다음에 또 보자~”
엉덩관절보다 허리를 너무 숙여서 인사하는 후배가 있으면,
“후배님이 허리를 너무 숙이는 이유는 '엉덩관절의 움직임에 제한'이 있어서 그래. 앞으로 계속 허리를 많이 사용하면 일상에서 많이 들어본 허리디스크 증상이 나타날지도 몰라. 우리 다음에 만나면 엉덩관절의 움직임을 개선해서 허리를 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다음에 봐~”.
이렇게 선배가 먼저 후배에서 다가가서 인사도 하고 전공 관련 지식을 알려주면, 선배의 존재가 각인될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마저 생기지 않을까요?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는 후배님 여긴 안 계시죠?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여러분을 바라볼 후배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금 바로 공부를 시작하자!,
근데 얘들아?"
"너희들 1학년 때도, 3학년 선배들이 너희들 인사 안 한다고 난리였어....^^”
<이 글을 읽고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1. 누군가에게 몸통을 앞으로 굽히라고 했을 때, 허리가 많이 움직이는지 또는 엉덩관절이 많이 움직이는지 확인해 보세요(첫 번째 그림의 동작을 비교해 보면 좋겠네요).
2. 많이 움직이는 부위가 있다면, 과연 그 부위가 유연해서 일까요? 다른 부위가 제한되어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