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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Feb 25. 2020

홈 스윗 홈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삶에 대하여


"코로나19가 심각 단계를 벗어날 때까지 책방 휴점을 하기로 했습니다."


2월 마지막 주는 휴가를 가려고 몇 달 전부터 비워둔 주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책방 투어를 해보겠다고 계획을 얼기설기 세워뒀는데 꼼짝없이 집순이가 됐다.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사장님들이 지역 사회 확산을 막는다며 책방 문을 걸어 잠갔다. 주머니를 더 채우기보단 대의를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사장님이 대단했다. 어디 가는 게 꺼려지고, 가려고 해도 발 닿을 곳이 줄어드는 슬픈 시국이다.


나는 확진자나 확진 의심자는 아니다. 환자가 아니어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회사에서, 지자체에서 수시로 전송받는다. 그래서 쉬는 날이지만 안전한 동선만 남겨 두었다. 1대1로 상대하는 피부 마사지와 골프 레슨을 후다닥 마치고 집에 왔다. 예약을 해 뒀는데 코로나 이유를 대며 무르기가 죄송스런 탓도 있었다.


집에선 종일 방에서 '랜선 소통'을 했다. 커피도 마시고 집안 일도 하고. 원래도 집순이인지라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놀 자신이 있는데 왜인지 자꾸만 휴대전화에 손이 간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포털 기사 등에 수시로 접속하면서 최신 코로나 소식을 시시각각 뇌에 쑤셔넣고 불안을 덜어내본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은 분주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휴대전화를 보면서 지낸다.


내가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용하면서도 내가 존중받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렇게나 침을 퉤퉤 뱉고, 담배 연기를 폴폴 뿜어대고,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고, 실수를 했다고 온갖 눈치를 주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집. 제복을 벗어던지고 얼굴을 겹겹이 짓누르던 화장을 다 지워버리고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공간. 밥 먹듯이 쏟아냈던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은 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집이 안식처를 넘어 최후의 대피공간이 됐다. 기능이 격상되니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나갔다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되도록 나오지 말고 짱 박혀 있는 공간. 하루 내내 했던 긴장을 풀어 냈던 곳이 이제는 하루 종일 숨죽이고 긴장하는 공간이 돼 버렸다.


넓은 생활 반경이 모두 집 구석으로 좁아지면서 우리 집은 강제적으로 단란한(?) 가족이 됐다. 정년 퇴직한 아빠에, 자택 근무를 독려당하는 동생, 개학이 미뤄진 엄마까지 한 자리에 모이면서 밀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 몸은 덜 피곤한데 마음은 더 갑갑하다. 그럭저럭 좁지 않은 집에서 지내는 사람 말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집의 부족한 기능이 더 뼈저린 취약점으로 느껴질 것이다.  


집 안에서 느끼는 지나친 안정감이 일상을, 체험을, 엔터테인먼트를 막아 세운 요즘이다. 집에서 에너지를 한껏 충전한 뒤 아침이면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던, 그 평범했던 일상이 하루가 다르게 한뼘씩 멀어져 간다. 생명력을 잠식당하지 않고 충전할 수 있었던 진정한 '홈 스윗 홈'은 언제쯤 찾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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