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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l 10. 2022

붙들고 있던 인연, 그 무의미함에 대하여


 코로나 격리기간. A가 보고 싶어 연락을 건넸다.


    "A야, 잘 지내? 뭐하고 사니. 나는 코로나 걸려서 집에서 요양 중이야"


한참 뒤에 온 A의 답장. 식어버린 답장에 비로소 깨달았다. 이젠 그만 손에서 내려놓고 흘려보내야 할 인연이라는 걸. 어쩌면 진작 깨달았어야 하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


    "나야 뭐 ㅠㅠ 코로나 걸려서 고생이겠다ㅎㅎㅜㅜ"


 A랑은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였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어도 서로 같은 과(科)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서로의 선을 지켜주면서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는 관계라고 할까. 서로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갈라졌어도 적어도 1년에 1~2번씩 만나 차 한잔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A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외무고시와 행정고시를 오랜 기간 준비했었다. 공부에 방해될까 연락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고, 어쩌다 먼저 해 오는 연락에 나는 살포시 응대를 해주거나 가끔씩 A가 좋아하는 카페라떼 기프티콘을 보냄으로써 마음을 대신했다. A는 가끔 헛헛해질 때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요샌 누굴 만나느냐며 자기의 연애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다 2년 전, 앞길에 대해 늘 갈팡질팡하던 A가 드디어 취업을 했단 소식을 들었다. 한 금융계 스타트업에 들어갔다고. 고시는 접겠다고 했었지만 과연 접을까 의아하고 걱정됐었는데 드디어 어디에 적을 두었다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묻따 만나자고 했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꽃을 한 아름 포장해 약속장소로 갔다. 가을날 우리는 합정역 선술집에 앉아 하이볼과 맥주를 기울였고  못했던 대화도 함께 쏟아냈다. 이토록 찐한 대화를 해본 건 너무 오랜만이라 감격스러웠다. 다음날 A는 내가 선물한 꽃을 화병에 꽂아 사진을 보내왔다. '너랑 대화하니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는 톡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게 나는 A가 취업만 되면 여행도 다니고, 더 자주 보고, 그렇게 끈끈한 단짝 친구가 될 거란 기대를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이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그날은 청첩장을 줄 겸 A에게 만나자고 했던 날이었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A는 연락이 없었다. 사실 A랑 약속을 할 때마다 A는 나에게 항상 여지를 남겼던 것 같다. A가 제시간에 온 적은 손에 꼽았고, 약속 당일에 일이 생겼다면서 미루거나, 아니면 내가 아무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나의 의중을 살피는 호의를 베풀며 너 편한 시간에 봐도 된다는 애매모호한 제안을 하거나. 말은 안 했지만 못내 서운했던 지점이었다.


 아무튼 연락이 없는 A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가 전화를 돌린다. 나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났다. 나와의 약속은 하찮은가? 그동안의 서운함이 물밀듯이 몰아쳤다. 다짜고짜 톡으로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을 토해버렸다. 나는 그간 항상 A의 의중을 맞추느라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전화를 돌리는 건 뭐냐?"

"버스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돌렸다"


"버스 안의 사람만 사람이고, 나는 사람 아니냐. 나한테 '사람 많으니 톡으로 할게' 그 정도 말은 한 다음 끊을 수 있지 않느냐"

"나는 원래 이렇게 한다"


결국 늦게 도착한 친구. 나는 너무 서운해서 그랬다면서 미안하다고 했고 A도 미안하다고 했다. 어색해질 뻔한 그날의 대화는 다행히 괜찮게 진행됐고 내 결혼식도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A한테 더욱 외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A가 사는 동네 갈 일이 있다며 연락을 건네도 다음날이 돼서야 답장이 왔다. 내 생일날에도 연락 한통이 없었다. A가 워낙 시크하고 자기 독립심이 강한 편이라고 해도, 나는 아등바등 이 친구와의 인연을 억지로 풀칠해갈 이유는 더 이상 찾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베어 내진 않아도 애써 이어붙일 이유는 없었다. 어제 이후로 더는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으론 잘 기억도 안 나는, 아득해져 버린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방패 삼아 '이 친구는 백 살 인생을 이어갈 인연'이라고 스티커를 붙여놓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친절이나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도 30대인 나로선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하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어제 친구의 그 톡이 그렇게 많이 서운하진 않았다. 서서히 깨닫고 있었던 감정의 확인사살용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또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이렇다. 나이가 들수록 떠나가는 인연은 하나 둘 늘어가는데 새 인연은 좀처럼 맺기 힘들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아줄 인연임을 알면서도 못 놓는 건 이 사람마저 보내버리면 내 인생을 이해할 다른 동반자가 나타날까 싶어서, 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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