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이 말이 좋기도 하면서도 불편하다. 칭찬받아야 할 것 말고 다른 것을 칭찬받는다는 기분 때문이다. 마치 배우들이 '잘 생기셨네요'란 칭찬보다 '연기 잘하시네요'란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맞받아친다.
"누가 쓴 거 읽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취재한 것들 원고를 작성해서 방송하는 건데요"
내가 맡고 있는 코너는 그날그날의 궁금증을 해설하는 코너다. "코로나 또 걸리면 재감염될까?", "이번에 금리가 올랐는데 주담대 이자는 얼마나 부담이 늘까?" 등등 분야를 망라하고 그날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내 전달한다.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는 게 꽤 힘에 부치는 일이라 점심도 거르기 일쑤다.
사실 이 코너는 차장급 선배들이 하셨던 코너다. 내가 맡게 된 건 정말이지 회사에서 큰 믿음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 선배랑 밥을 먹는데 "남들이 많이 부러워하더라"라고 한 마디 툭 던지셨다. 이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게다가 내가 지향하는 기자의 모습은 '친절한 기자'였기에 그 훈련을 하는 데는 이만한 코너가 없었다.
정신없이 원고를 쓰고 방송을 마치고 나면 나는 '내 모습이 예뻤는지'엔 관심이 별로 없다. 정말 솔직하게 살이 쪘나 안 쪘나 정도만 약간 신경 쓰일 뿐 그날그날 화장이 어땠는지, 머리가 어땠는지는 내 관심 밖이다. 대신 그래픽이 세련되게 나왔는지, 내 원고가 충실했는지, 이 내용도 담았어야 하지 않는지, 내 원고에 궁금증이 남아있진 않는지…. 이게 나의 가장 관심사다. 화면에 못 나오는 것보다 못 쓴 원고로 방송하는 게 훨씬 견디기가 힘들다.
박사님이 또 질문을 던지신다.
"본인이 왜 그런다고 생각해요? 외모엔 결핍감이 없는 거예요"
내가 예쁘다거나 그렇다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외모에 대해서 상처를 받아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꾸밀 줄도 몰랐고 옷도 티에 청바지 하나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가 일쑤. 친구들이 "제발 꾸몄으면 좋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네, 저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중심을 잘 잡고 싶어요"
중심을 잘 잡고 싶다는 말은 때때로 중심이 안 잡힐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내가 결핍을 외모가 아닌 딴 곳에서 느끼고 있음을 느꼈다.
"저는 방송한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약간 꺼려지고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근사한 곳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사치를 누릴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누릴 아주 가난한 사람도 아니지만요. 뭔가 그렇게는 잘 안 하게 돼요. 내가 가진 것에 그냥 소소히 만족하면서 살고 싶어요"
말을 들으시던 원장님은 그렇게 정제된 삶을 사는 방향이 옳다고 하셨다. 다만 이렇게 사는 사람 중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누릴 것은 다 누려보니 세상엔 별 거 없구나 하고 깨달은 사람, 후자는 별 경험 없이 가치관을 정립한 사람. 나는 후자였다.
"전자의 경우 갈등에 놓일 때가 잘 없지만 후자의 경우 종종 내면의 갈등이 발생해요"
맞다. 사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결혼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나 골프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내 분수에 맞게 살래'라고 애써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았던 기억들. 하지만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나만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었다. 1시간여 상담이 끝나자 원장님의 첫 화두에 대해 내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출처: 동아일보
경제적인 면에서 결핍감을 안 느낀 척하려 살아왔지만 실제론 내면 속에 결핍이 존재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집이 엄청 가난하진 않았다. 하지만 세 명의 자식들을 키우는 엄마 아빠에게 부담이 안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롯데월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나까지 먹으면 3인분을 투자해야 하는 엄마가 싫어서 나는 일부러 안 먹겠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외동만 키우는 집안보다 우리는 3배의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물질에 너무 현혹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억만장자가 아니기에 많이 가지기보단 많이 존재하고 싶단 수많은 다짐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핍을 느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한 없이 쿨해도, 어떤 부분에 대해선 어딘가 쿨하지 못해 미안한 사람이 돼 버린다면 그 부분은 분명 각인된 경험과 연결돼 있다. 오늘의 상담으로 배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