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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04. 2023

[후쿠시마 출장기③] 방류 개시 다음날, 표정 훑기


■ 방류 개시 D+1


 방류 개시 다음날, 이날 오전이 우케도 항구에서 하는 중계 마지막 날이었다. 뭔가 더 아득해져서, 원전과 방파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제 서둘러 르포 기사를 만들러 이동해야 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마을, 후타바마치의 '후타바'. 여전히 시간은 12년 전에 멈춰 있다. / 직접 촬영


 방류 개시 다음날 표정을 담으러 첫 번째 행선지 후타바 마을로 향했다.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후타바마치 후타바에선 지진 이후 12년째 방치된 건물들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상 폐허가 된 마을은 고요했다. 지난 2020년부터 피난 지시가 해제됐지만 여전히 살고 있는 주민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사능 걱정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새로 입주할 주민을 위해 건물을 새로 짓는 인부 한 명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 분 역시 지진 이후 피난을 갔다가 최근 자신의 고향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로 돌아온 분이었다. 그는 피난 지시 이후 부모 상당수가 다른 마을로 떠났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정착을 한 탓도 있겠지만) 방류 이후엔 더더욱 방사능 걱정에 이곳에 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돼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은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 타카쿠라 / 공사 인부 -


오나하마항 수산시장, 점심시간이지만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 직접 촬영  

 다음으로 향한 곳은 후쿠시마현에서 가장 큰 어시장인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시장이다. 11시 반,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상인들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동안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시가 돼서야 드문드문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우리처럼 홍콩 매체가 굉장히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함께 취재를 돕고 있는 코디는 중국대사관에서 연결해 준 것이라고 한다. 대일 비판에 있어선 중국과 홍콩이 남남이 아니라 합심해서 열을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촬영 허가가 안 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장에서 우리에게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수산물 안전에 대해 홍보할 필요성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온 방문객 여러 명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걱정이 되면 이곳에 올 리가 없었다. 방류 개시 전에 이곳에 왔으면 다른 대답을 들었을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잘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토 / 방문객 -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있어서, 서핑을 하고 왔습니다"

- 게이지/ 방문객 -


 방문객들과 달리, 상인들은 오염수 방류가 또 다른 상처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재해 직후엔 이런 것(수산물) 어떻게 먹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처리수(오염수) 방류 이후엔 그런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야마사키 / 오나하마항 상인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불안은 있습니다. 손님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하가 / 오나하마항 상인 -


 상인들은 손님이 믿고 후쿠시마현 수산물을 기꺼이 구매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한적한 낚시터와 해수욕장. 이곳을 찾는 사람과 찾지 않는 사람들의 온도 차가 극명했다. / 직접 촬영

 차를 타고 가다 이와키시 에나 항구에 들렀다.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대여섯 명이 낚시를 하고 있다. 대부분 지금 낚아 올린 생선을 당연히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래세대는 걱정하고 있었는데, 인터뷰에 응한 낚시꾼은 "자신은 늙어서 괜찮지만, 미래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라고 했다.


 근처 이와키시 우스이소 해수욕장도 들렀다. 차 창문을 내리고 가는 길을 좀 물었더니 한 주민이 "오염수 방류됐는데, 거기에 가면 어떡하냐"라고 펄쩍 뛴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텅 비어었다. 더위를 떨치기 위해 일부 주민들만이 바다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바다에 발을 살짝 담그고 나온 소녀 두 명에게 방류했는데, 수영해도 괜찮은지 물었더"고등학교 이과 시간에 안전하다고 배웠다"라고 자신 있게 답한다.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어 바다에 막 뛰어드려던 남고생들에게도 다가갔다. 그들은 아예 오염수 방류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 그중 뉴스를 본 한 녀석만 "아, 처리수요?"라고 반응을 해 줬고, 나머지는 "무지해서 죄송하다"며 해맑게 미소를 짓는다. 이후 녀석들은 아무 걱정 없이 바다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이후 또 다른 나이 지긋한 서퍼를 마주했다. "아이들은 오염수(처리수) 문제로 못 내보내고, 나만 바다를 즐기고 있다"라고 답했다. 자신은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걱정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웃어 보였다.  




 그동안 오염수 방류를 한국인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서만 달갑지 않은 뉴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출장을 통해 이곳 후쿠시마현 주민들에겐 누구보다 가장 가깝게 맞닥뜨리는 현실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011년 재해를 거치며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동시에 '어쩌겠어요?'  체념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더불어 방류에 대해 느끼는 온도 차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전날 만났던 격렬한 반대 시위자들, 반대하지만 어느 정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정말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아예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정책 수용자들의 태도와 생각은 다양했다. 다 각자의 렌즈와 사고 체계로 이번 이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이번 방류가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는 편에 속하지만, 같이 간 촬영기자만 봐도 수돗물 대신 생수로 양치하고 납조끼까지 챙겨 입었을뿐더러 마스크도 절대로 벗지 않았다. 내게 양보한 방호복도 방송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내어준 것이었다. 설사 정부가 발표한 대로 안전할지언정 의심해 보고 또 걱정이 드는 시민들을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와 시민의 간극은 좁힐 수 있는 것일까. 좁힌다면 그 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정부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식일지, 시민 목소리가 흡수될 창구를 더 만드는 방식일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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