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망의 D-DAY
대망의 방류 개시일, 아침뉴스 중계를 위해 새벽 5시쯤 일어나 기사를 올리고 6시 반까지 다시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우케도항으로 향했다. 아침이 되니 후쿠시마 제1원전이 또렷이 보인다. 턱이 높아서 방파제로 바로 오르는 게 무리라, 멀리 빙 돌아서 방파제에 올랐다. 방류 당일이라 그런지 원전을 찍으러 온 내외신 기자들이 많았다.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기자, 미국의 AP통신 기자들이 보인다. 방호복을 입은 우리들이 신기한지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댄다.
무사히 중계를 마친 뒤, 오나하마항 취재를 하러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들어가는 후타바마치 마을 인근에서 방류 반대 시위대를 마주쳤다. 방류를 불과 3시간 정도 앞둔 시간, 주민 10여 명이 모여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원전 주변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방류를 코앞에 두고선 이곳저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반대하는 주민 의견이 만만치 않구나 느꼈다. 시위하는 주민이든 속으로만 반대하는 주민이든, '정부는 원하는 정책을 집행하고 주민들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무력감과 반발감이 심해 보였다. 사실 방류를 할 수밖에 없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진 않은 만큼 어찌 보면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공포감을 더 확산하느냐, 아니면 불식시키느냐.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을 가욋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스쳤다.
"도쿄전력은 삼중수소를 안전한 방법으로 흘린다고 강조하지만, 각종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A 시위자
"바다와 생선,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피해자였지만 이제는 방류를 멈추지 못한 가해자가 됐습니다. 바다와 연결된 사람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 야타베 유코 / 시위자
"남태평양 국가들, 한국 등 전 세계의 협력을 꼭 부탁드립니다. 포기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 쿠로다 세츠코 / 시위자
이와키시역 근처에서도 11시에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이번엔 주민보다는, 일본 공산당 주최로 시민단체들이 모여 있었다.
"한번 흘리면 30년을 흘리는데, 안전할 수도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어민들 피해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어민들 위주로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후쿠시마현 주민들 80~90%가 대부분 반대하고 있습니다"
- 타카요세 류지/ 시위자, 日 공산당원 -
나미에 해변에서도, 도쿄에 있는 도쿄전력 본사 앞에도 시위대가 몰렸다. 반대 시위를 반대하는 우익단체 시위도 마주했다. 이날은 시위 위주로 취재를 했지만, 방류하는 1시쯤엔 원전에 최대한 근접해 있을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해저터널로 방류하기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방류 당일 메인뉴스 중계를 마친 뒤, 밤엔 뚜껑 있는 아사히 맥주를 시원하게 땄다. 이상한 습관들이 보인다. 고쳐야겠다. 도쿄 특파원이 없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조금만 미리 준비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반까이는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땐 안전하다는 IAEA와 일본 정부의 말을 나는 더 습득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이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해 보게 됐다. <재난반복사회>를 쓴 김석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과학기술자들은 위험성을 계산된 위험의 객관화된 현상으로 이해하는 반면, 대중은 직관적 판단이나 개인적 경험 또는 특정 집단과의 소통을 통해 주관적 위험으로 판단한다"라고 했다. 전문가와 대중 간 인식의 비대칭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헛된 보도'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단순히 정부의 발표를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거나,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양적으로 담아 보도하는 것, 둘 모두 그저 일방향적인 수단이 아닐까. 단편적인 보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점선면을 통해 이들을 연결해내야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스쳤다.